약한자여 그대 이름은
2008.05.07 15:51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이 월란
오랜만에 딸과의 데이트
그동안 피터지게 싸운 혈전의 잠정적인 휴전파티
그녀는 내게 가장 높은 산이었고
가장 거친 파도였다
그녀는 요즘 인조 속눈썹을 붙이고 다닌다
엘모인형같은 서양아이들의 긴 속눈썹이 만드는
짙은 그늘이 부러워 매일 소화가 안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을
난 이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넘지 못할 산이었다는 것을 인정한 후에
밀려오는 시퍼런 물살에 몇 번 까무라친 후에
비로소
날 할퀴던 그 손톱이 부러질까 더 걱정하는
내 이름은 엄마였다
나의 피붙이가 갑자기 눈물겹도록 사무쳐
그녀의 손을 잡고 어깨를 감싼다
갑자기 질겁을 하며
그녀의 입술이 전하는 신중한 경고문
엄마가 내 또래로 보인대잖아
엄마가 날 만지면 우린 레즈비언이야
밖에선 제발 건드리지 마세요
간들거리며 멀어지는 그녀의 뒷통수에
흘겨 꽂히는 내 눈동자
무안함 속에 찔끔 나왔던 눈물이
환희의 눈물로 둔갑한 뒤 쏙 들어간다
강한자여 그대 이름은
어머니
약한자여 그대 이름은
세월 앞에 무릎 꿇고도
거울 앞을 떠나지 못하는
그대
아름다운 그대 이름은
여자였다고
2006-12-26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0459 | 어느날 오후 | 차신재 | 2014.10.16 | 279 |
10458 | 황제 펭귄 | 정해정 | 2006.02.15 | 278 |
10457 | 설날, '부모님께 송금'하는 젊은이를 생각하며 | 정찬열 | 2006.02.05 | 278 |
10456 | 세월 | 홍인숙(그레이스) | 2004.08.04 | 278 |
10455 | 가든그로브에서 캐나다 록키까지(2) | 정찬열 | 2006.08.30 | 276 |
10454 | 당신의 첫사랑 | 박경숙 | 2005.06.08 | 276 |
10453 | 꽃씨 강강 수월래 | 김영교 | 2010.12.06 | 275 |
10452 | 멍청한 미국 샤핑몰 | 오연희 | 2004.08.09 | 273 |
10451 | 홍인숙 시의 시인적 갈증(渴症)과 파장(波長)에 대하여 / 이양우(鯉洋雨) | 홍인숙(그레이스) | 2004.07.30 | 268 |
10450 | 인생의 4계절 | 박경숙 | 2005.06.04 | 267 |
10449 | 고래 | 풀꽃 | 2004.07.25 | 267 |
10448 | 짜장면을 먹으며 | 오연희 | 2005.04.08 | 266 |
10447 | 가을이 지나가는 길 모퉁이에 서서 / 석정희 | 석정희 | 2006.01.10 | 265 |
10446 | 11월의 우요일 | 박경숙 | 2004.11.11 | 264 |
10445 | 마음은 푸른 창공을 날고 | 홍인숙(Grace) | 2004.08.17 | 264 |
10444 | 기도의 그림자 속으로 | 조만연.조옥동 | 2004.07.28 | 264 |
10443 | 그 거리의 '6월' | 박경숙 | 2005.06.19 | 263 |
10442 | 베고니아 꽃 | 곽상희 | 2007.09.08 | 261 |
10441 | -도종환의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를 읽고- | 오연희 | 2006.08.09 | 261 |
10440 | 한정식과 디어헌터 | 서 량 | 2005.09.10 | 2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