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도


                                                                이 월란




한 순간의 기억으로
하루를 버티던 날이 당신에게도 있었으리라


이 세상 어떤 언어로도
새겨 놓치 못할 순간들이 발 붙일 곳 없어 떠돌다  
낙숫물되어 떨어지기도, 차디 찬 허공에 뻘쭘히 매달리기도 하여
그렇게 매어달린 고드름같은 응어리에서도 하얀 설수방울이
온종일 똑똑 가슴에서 발등으로 떨어져 내리던 날
당신에게도 있었으리라


창극의 별들이 모두
내 이마에 떨어져 아침이면 별들이 타고 남은 자리가
탄흔처럼 패여 손끝에 만져지던 날들이  
당신에게도 있었으리라


세상은 나 없이 더 잘돌아 갈 것만 같아
고뇌의 갓밝이로 뜨는 해를 바라보며
문 밖으로 차마 가슴 내어 놓지 못했던 아침이
당신에게도 있었으리라


그렇게 하루해가 병상에 누운 듯
별다른 높낮이 없이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담담한 곡조로
길고도 지루하게 훑고 지나갔을 때에도
길가에 이름모를 꽃들은 지천으로 잉태되고 아기울음 울어
부질없이 명치 끝이 아려왔던 날이
당신에게도 있었으리라


잔양판에 남은 볕조각 그림자마저 삼킬 때면
기억처럼 떨어지는 허연 살비듬에 몸서리치며
목덜미를 낚아채는 어둠에 쫓겨 결승테이프를 끊듯
벅찬숨으로 불면의 집으로 들어서던 밤이
당신에게도 있었으리라


당신에게도,
나만이 아닌 당신에게도
그런 날들이 정녕 있었으리라
                                
                                                         2007-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