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보석상자
2008.05.09 15:22
내 마음의 보석상자
이 월란
내가 시집을 오고, 교과서 속의 나라로 국적을 바꾸고
Kim 이라는 라스트네임이 정자로 박힌 하얀 우체통에서
처음 꺼내어 든 편지
그 때까지 아버지에게서 편지를 받아본 적은 없었다
군대도 가지 않은 여식이니 기회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으리라
내가 보내드린 편지에서 초록 잔디가 깔린 깨끗한 골목의 풍경들을
말씀하시며 약간 흘림체로 또박또박 써내려가신 그 휘필은
올백으로 넘기신 당신의 머리카락이 흐트러질까
늘 회색빛 빵모자를 쓰고 누우시던 그 분의 얼굴을
돋보기 너머로 예리하게 쏘아보시던 그 엄한 눈빛을
초등 때 변비 때문에 집으로 뛰어갔을 때 장부정리를 하시다가
현관 문 안쪽에 신문지를 깔아놓으시고 나의 엉덩짝을 꼭꼭
눌러주시던 그 모습까지 하나하나 불러들여
제대로 읽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몇 십번, 몇 백번을 처음처럼 다시 봉투에서 꺼내고
처음처럼 다시 읽어보고, 처음처럼 다시 봉투에 넣어
지금은 저 벽장 박스 속에 가지런히 들어있는 보석상자
마음이 허해질 때마다 눈으로만 벽장 문을 열고 꺼내어보던
가슴이 허해질 때마다 가슴으로만 벽장 문을 열고 꺼내어보던
19년 전의 편지
이젠 가서 꺼내어 보지 않아도 가슴엔 늘 편지가 온다
18년 전에 가신 그 분에게서 난 오늘도 첫 편지를 받는다
2007-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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