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에 대하여

2008.05.10 10:03

이월란 조회 수:0




기다림에 대하여


                                                         이 월란




기다림 속에선
누군가 뒤돌아선 골목 어귀에 늘 첫눈이 내리고 있다
밤을 팬 새벽이 한결같은 맘으로 이제 막 일어서고 있고
두 눈 시리도록 푸른 아침의 설원에 선한 첫발자국 남기려
나의 한쪽 발이 들리고 있다


기다림 속에선
상영되지 않은 영화가 두근거리는 가슴 사이로
손풍금의 주름상자같은 휘장을 젖히고 있고
내 이름 석자, 검은 스크린에 별처럼 뜨고 있다


기다림 속에선
우주의 동면에서 막 깨어난 씨앗 하나
목성 쯤에서 날아온 꽃가루 타고
지구에 발을 내리고 있다


기다림 속에선
물결무늬 화려한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서러워 버거워진 눈빛이 할 말을 잊고
무언의 꽃 한송이 잎맥따라 대신 피어나고 있다


기다림 속에선
갱지 위에 흩어져 탈고되지 못하는 부박한 시나리오가
끊임없이 각색되어
지치지도 않고 무대 위를 오르내리고 있다


기다림 속에선
숯덩이같은 교망(翹望)에 불씨를 놓고
늘 누군가 투명한 가슴으로 웃고 있다
지상에서 가장 환하고 눈부신 화로 안에서

                                    
                                                           2007-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