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그냥 그런 맛인가봐

2008.07.23 06:20

성민희 조회 수:57

삼촌네 회사에 출근하기로 한 아들 녀석. 제 버릇이 어디 가나. 아침마다 부시시한 얼굴에 물이 뚝뚝 흐를것 같은 젖은 머리로 내려온다. 저녁마다 제발 좀 일찍 자라고 사정을 해도 밤 1-2시나 되어서 자는 모양이니, 진짜 직장에 가 서도 저러고 다니면 어쩌나 싶어 버릇을 고칠 양으로 오늘 아침에는 깨우지도 않고 있었다. 떠나도 한참 되었을 시간에 넥타이를 손에 쥐고 뛰어 내려온 아들. 지금 먹을 시간 없으니까 싸가서 먹겠단다. 남편의 아침은 현미 잡곡으로 만들어 얼려 놓은 떡 하나 내려서 녹이고 검은 깨, 콩으로 만든 미 숫 가루 한 숫가락 넣은 과일 쥬스 한잔. 그리고 사과 한 알로 간단하지만 아들의 아침은 그렇 게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준비하는 동안 느긋이 신문을 뒤적이고 있을 이른 아침 시각이 이번 주 부터는 바쁘다. 달걀을 훌훌 풀고 토마토 썰고, 아모카도 썰고, 양파에 호박에 샐러리에 파에 햄, 올리브까지 넣 어서 섞었다. 영양 만점, 맛 만점의 보들보들한 오무라이스를 만들어 금쪽같은 내 새끼에게 먹이리라 행복한 마음으로 잘 섞인 달걀을 후라이팬에 부으려는 순간. 어제 사 둔 블루베리가 떠 올랐다. 냉장고를 뒤져 깨끗이 씻어 섞으니 색깔까지 초록 , 빨강, 보라. 영양덩어리가 둥둥 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여간 좋은게 아니다. 허둥지둥 내려온 아들 녀석. 마른 논에 물이 들어가듯이 술렁술렁 먹어주겠지 기대했었는데. 후후 불어가며 맛있다를 연발하기는 커녕 인정머리 없이 플라스틱 그릇에 탁 부어버린다. 오무라이스 큰 덩치가 쑤욱 밀려서 프라스틱 통에 들어가니 보라색 보드랍던 블루베리가 터져서 접시에 길게 선을 그리며 흔적을 남긴다. 저 아까운걸 어쩌나. 식어버리면 맛도 없을텐데. 안타까운 내 맘도 같이 접시에 줄을 긋고 플라스틱 통 속으로 들어가는데 "엄마! 누가 오무라이스에 블루베리를 넣는대요. 이거 넣으면 맛이 엉망 되쟎아." 깜짝 놀랐다. 이게 무슨 소리? 내가 미국 식당에서 블루베리 든 오무라이스를 먹은게 몇 번인데? "야~가 뭐라카노. 오무라이스에 블루베리가 들어가면 얼마나 맛있는데. 영양도 많고." 아들의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얘가 나를 촌놈 취급하고 있네. 나도 미국 식 당에서 먹어본 사람인데. " IHOP 에 가봐라. 거기가면 블루베리 들어있는 오무라이스가 인기다? " 플라스틱 통을 확 나꾸채어 가며 아들이 쿡 웃어버린다. " 엄마~~ 그건 팬케익이쟎아~~~ " 갑자기 머리가 띵하며 한바퀴를 돌고 제자리를 찾았다. 커다란 접시 위에 앉은 노릿노릿 잘 익 은 팬케익 사이에 박혀있는 블루베리가 보인다. (아하. 이런 주책. 그렇지. 그건 팬케익이었지.) 저녁 식사 시간. 웃을양으로 아침에 있었던 나의 실수담을 이야기 했다. 거기다 덧붙여 어제 아 침에는 잘 먹더니 오늘은 트집을 잡더라고도. 같이 웃던 아들. 어제 오무라이스를 보고 한심했지만, 즉시 말하면 엄마 마음 아플까봐 말 안했 단다. 엄마도 입이 있으니 먹어보면 스스로 알게 될거라고. "그런데 또 넣었쟎아. 오늘은 더 많이 넣었더라고. 가만히 보니 내일도 그럴 것 같더라니까. " 딸이 배를 잡고 웃었다. 엄마는 원래 지네들이 잘 먹는다 싶으면 일주일 내내 내어 놓을테니 일 찌감치 바로 잘 잡았다며 서로 마주 보곤 하이 파이브까지 하고 있다. 얼굴이 벌개진 나를 보기가 딱했던지 남편이 한마디 거든다. "나는 맛있게 먹었는데?" "아빠. 맛이 이상하지 않았어요?" "아니. 나는 본래 오무라이스는 그런 맛인줄 알고 먹었지. 본래 그런 맛이라고 생각하고 먹으 니 아무렇지도 않던데? " 얼마전에 한국 마켓 뒷마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멕시칸들이 국그릇을 들고 않아 있던 모 습이 떠올랐다. 가까이 가 보니 모두들 시뻘건 육계장을 한 사발씩 들고 앉았는데 밥은 상에 그대로 두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건더기를 건져가며 먹고 있었다. 놀라서 물었다. 짜고 맵지 않냐고. 한국의 수프는 본래 그런거 아니냐며 도로 내게 물었다. 소금구이를 시킨 미국 사람들이 상추, 파 겉절이가 나오면 그걸 샐러드인줄 알고 마구 먹고 있 는 모습도 심심챦게 식당에서 본다. 그 사람들도 그런 마음이었겠지. 한국 샐러드는 본래 이렇게 짠가 보다. 사람의 마음이란게. 그렇거니 하고 열어두고 나면 못 담을게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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