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내시경
2008.11.20 09:00
대장내시경
괜찮은 여자가 옆에 와 누웠다
팬티까지 벗어야 되냐고 묻는 것 같았다
커튼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나란히 누워 멀뚱멀뚱
어색한 잠을 기다리고 있었다
약은 우리를 잠 속으로 쉬 데려가지 못했기 때문에
알몸으로 작업을 걸었다
아침에 우리는 둘 다 설사를 열 서너 번씩 했기 때문에
몸을 비운 상태로 이야길 나눈다며 함께 웃었다
만나자마자 당신은 알몸으로 내 곁에 누웠다고 말하자 또 웃어주었다
엎드려 궁둥이를 만지며 죽 한 그릇을 나눠 먹고싶다 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랬지만,
허공에 대고 마구 휘두르는 파리채처럼
발가벗고 누워 건네는 대화는 그녀에게 착용감이 없는 듯 했고
성욕같은건 더더욱 일지 않았다
흘깃거렸던 그녀 신체의 중요부위에 대한 상상들이
배변 습관이나 색깔 등 똥같은 이야기에 좔좔 설사가 되어버렸다
천정에 바둑판을 그려 놓고 누워서 단수를 치는 선문답은
내장의 굴곡을 뱀처럼 쏘아보는 내시경의 눈깔이지 못하고
마취 풀린 항문처럼 이물스러웠다
우리는 결국 함께 잠을 이루지 못했고
끌려가는 침대의 끼릭거리는 바퀴소리에
봉긋 솟은 여자의 치골이 커튼 사이로 소스라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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