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길/양연길

2016.01.09 11:22

양연길 조회 수:98

가깝고도 먼 길

꽃밭정이 수필창작반 양 연 길



아침 일찍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임원과 실행위원 80여 명이 두 대의 관광버스를 타고 여의도(汝矣島)를 떠났다. 전방부대방문과 판문점 견학을 위해서였다. 통일대교 검문소에서 오늘의 일정을 함께할 육군 1사단 군종목사가 승차해 친절한 안내를 해주었다. 헌병 차량의 인도로 이제까지 민간인 대형버스가 남북분단 이래 한 번도 접근하지 못한 남방한계선 철책을 따라 이동하게 되는데 길이 좁고 굴곡이 심하다고 했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북한을 바라볼 수 있고 분단 상황의 어려운 현실을 직접 체감하게 될 것이라 했다.

앞서 가던 헌병 차량이 샛길로 접어들었다. 우리가 탄 버스도 뒤를 따랐다. 철책선을 따라 곡예하듯 조심조심 이동했다. 길은 몹시 좁아 차가 겨우 지날 정도였다. 서행하는 차량의 유리창을 때리는 나뭇가지에 깜짝 놀라기도 했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철책선 너머 임진강은 물 흐름을 멈춘 것 같았다. 마치 검은 천이 길게 펼쳐진 듯했다. 자맥질하다 들고 나는 오리 떼가 보이지 않았다면 생명의 강이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리 떼가 한가로이 유영을 하면 하얀 물줄기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들고 날 때 튀는 물방울이 햇빛에 반사되어 번쩍였다. 철책선과 강 사이의 갈대와 억새가 어우러진 넓은 들은 고라니 무리가 평화롭게 노닐고 있었다. 지근거리의 산자락까지 이어진 논밭에는 검은 독수리 떼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저렇게 많은 무리가 이 겨울에 무엇을 먹고 살까 걱정이 되었다. 이런 내 생각을 알아차렸다는 듯 군종목사가 설명을 했다. 육류업자나 수산업자가 일주일에 한두 번씩 고기를 싣고와 던져주고 간다고.

나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 졌다. 풀리지 않는 남북관계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강물과 강변에서 노니는 오리와 고라니 떼는 저렇게 평화롭게 자유를 만끽하는 데, 왜 사람들은 철책을 만들어 놓고 스스로 평화를 깨뜨리고 자유를 구속한단 말인가?

검은 독수리 떼는 매서운 눈으로 무엇인가를 응시하며 웅크리고 있다가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펴 위용을 과시하려는 듯 날아올랐다가 내려앉으며 성큼성큼 걷는 것이 교활하고 엉큼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쩐 일일까? 내 눈에는 굶주린 놈이 괜한 허세를 부리는 것 같아 보였다. 북한 위정자들의 모습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굶주림에 먹이를 탐하면서도 허세를 부리는 독수리나, 굶주리는 주민들은 외면하면서 도움받기를 원하고, 호시탐탐 전쟁도발의 야욕을 평화로 포장하며, 기회만 노리는 사악한 북한의 위정자들 모습과 무엇이 다르랴.

육군 1사단 12연대 1초소에 도착한 우리는 한기총이 후원한 독서카페 기증식을 마치고 JSA(Joint Security Area)경비대대 장병들과 성탄예배를 드리기 위해 곧 이동했다. 대대 위병소를 들어서니, 잘 조경되고 관리된 어느 공원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었다. 부대 환경은 참 아름답고 평화롭고 깨끗했다. 예배당에 들어서자 강단 뒤 벽면은 한반도의 북쪽 지도가 갈색 바탕에 하얀색으로 음각되어있고, 그 위에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북한을 복음화하여 기필코 통일성업을 완수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것 같았다. 십자가가 북한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의 환상일까?

예배에서 한기총 대표회장은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처음 들은 사람들은 밤새 양을 지키던 목자들이었다. 그들은 자기의 자리에서 자기들의 사명을 성실히 수행한 사람들이다. 오늘날 예수님이 오신다면 국가의 안녕과 안보를 위해 헌신하는 장병들이 목자의 역할을 대신할 것이다. 장병여러분과 크리스천들은 이 땅에 진정한 평안이 임하고 남과 북이 하루빨리 평화통일을 이루도록 평화의 사도로서 역할을 다하자”라는 말씀을 전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온 우리 일행은 사단에서 제공한 군용버스에 올라 판문점으로 행했다. 동승한 안내 병사가 판문점 견학 요령과 주의 사항을 말해 주었다.

군사분계선(MDL : Military Demarcation Line)은 한반도(韓半島)의 허리를 잘라 남․북으로 갈라놓은 선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공산군의 기습남침으로 발발(勃發)한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유엔군과 북한 공산군 사이에 군사정전협정이 조인되자 총성이 멎었다. 이 협정과 함께 그어진 선에 철책이 처져있었다, 그 길이는 동해안 고성 명호리에서부터 서해안 강화 교동도까지 155마일( 248km)이다. 비록 총성은 멎었지만 5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긴장관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일촉즉발의 위험도 상존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의 도발은 수없이 많았고 인명과 재산에 막대한 희생과 손실을 초래했다. 판문점은 군사분계선 중 유일하게 철책선이 걷힌 곳이다. 경기도 파주 진서면 공동경비구역(JSA : Joint security area) 안에 있다. 군사분계선 남쪽에는 자유의 집, 북쪽에는 판문각이 지척에서 마주보고 있다.

우리 일행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추위가 주춤한 날씨였다. 경계하는 양측 초병의 눈초리는 매섭고 싸늘했으나, 자연풍광은 참 평화롭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자유의 집과 판문각 사이에는 군사분계선이 지나고 다섯 개의 막사는 그 선상에 있었다. 가운데 세 개는 푸른색이고 그 양쪽은 은색이었다. 하늘색 막사는 한국군이, 은색 막사는 북한군이 관리하고 있었다. 다섯 개의 막사 중 한 가운데 막사는 남북군사고위급회담이 열렸던 장소로 상황에 따라 남과 북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나는 일행과 더불어 안내 병사를 따라 막사로 들어갔다. 중앙에 긴 책상과 다섯 개의 의자가 양쪽과 모서리에 덩그렇게 놓여있었다. 책상위에는 몇 마리 마우스가 동서로 줄지어 있었다. 안내 병사가 마우스의 선이 군사분계선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성명해 주었다. 나는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0,1초도 걸리지 않았다. 몇 분간 머무르다 다시 넘어오는 것도 순간이었다. 화합과 합의가 이루어지고 이를 지키기만 하면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남북을 오가는 것은 아무런 제약이나 문제가 없는데, 그것을 이루기가 어찌 그리 어렵단 말인가. 서울과 평양은 몇 시간이면 오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인데 무엇이 반세기가 넘도록 자유롭게 오갈 수 없는 먼 길로 만들어 놓았는가? 통탄할 일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중에서 나는 마음속에 메아리치는 노랫소리를 들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 나라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안석주 작사 안병원 작곡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아픔을 느꼈다. 아니 통증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이 나라 이 민족의 한결같은 염원은 통일이 아니던가?

(2015.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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