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의 사자성어/정남숙

2016.01.10 07:47

정남숙 조회 수:154

2015년의 사자성어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교수신문은 다사다난했던 2015년을 보내며 한 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를 ‘혼용무도(昏庸無道)’로 정했다, 혼용무도는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暗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뜻이다. 혼용(昏庸)은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가리키는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이 합쳐져 이뤄진 말이다. 각박해진 사회분위기의 책임을 군주(君主), 다시 말해 지도자에게 묻는 말이다.

혼용은 고사에서, 흔히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을 지칭하는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을 함께 일컫는다. 무도(無道)는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음을 묘사한『論語』「天下無道」에서 유래했다. 이를 추천한 교수는 ‘한자문화권에서 일상적으로 많이 쓰이는 성어’라고 했다. 지난 연초(年初),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사태로 온 나라의 민심이 흉흉했으나, 정부는 이를 통제하지 못하고 무능함을 보여줬다. 중반기(中半期)에는 여당 원내대표에 대한 청와대의 사퇴압력으로 삼권분립과 의회주의 원칙이 크게 훼손됐고, 후반기(後半期)에 들어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國定化) 논란으로 국력의 낭비가 초래됐다며 정치지도자의 무능력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교수들은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 사자성어는,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도행역시(倒行逆施)이었다. 도행역시는 박근혜 정부의 출현 이후,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역사의 수레바퀴를 퇴행적으로 후퇴시키는 정책·인사가 고집되는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며, 소통보다 불통을 고집하는 '미망(迷妄)에서 돌아 나와 깨달음을 얻자'는 의미인 '전미개오'(轉迷開悟)를 주문했었다. 2014년에는 '지록위마(指鹿爲馬)'를 꼽아 '비선세력의 국정농단'을 질타하는 등, 박근혜 정부에 대해 신랄한 비판적 입장을 보여 주었다. 이 같은 비판적 시각은, 한 해 동안 이어졌던 정치, 경제, 사회, 국제적으로, 다양한 사건사고에 정부가 제대로 대응(對應)하지 못하고, 거듭된 의혹을 제대로 해명(解明)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율곡(栗谷) 이이(李珥)는, 그의 저서 <율곡전서> ‘잡저·동호문답’)에서 ‘임금의 도리를 논’하면서, 잘하는 정치를 성군(聖君)과 명군(明君)으로, 문란(紊亂)한 지도자(指導者)에는 폭군(暴君), 혼군(昏君), 용군(庸君)으로 분류(分類)하였다. 임금의 재지(才智)가 출중(出衆)해서 호걸(豪傑)을 잘 부리면 잘하는 정치(政治)가 되고, 임금의 재지(才智)는 좀 부족하더라도 어진 이에게 맡긴다 해도 잘하는 정치가 된다고 했다. 상(商)나라 태갑(太甲)은 이윤(伊尹)을, 주(周)나라 성왕(成王)은 주공(周公)에게 정사를 맡겼다, 두 사람은 군주(君主)의 자질(資質)은 모자랐지만 현명(賢明)한 신하를 발탁(拔擢)함으로써 성군(聖君)에 버금가는 명군(明君)의 반열(班列)에 올랐다는 것이다.

이이(李珥)는 춘추시대(春秋時代) 5패(覇)인, 진(晉) 문공(文公)과 제(齊)나라 환공(桓公), 초(楚) 장공(莊公), 송(宋) 양공(襄公), 진(秦) 목공(穆公) 등을 예로 들었다

폭군(暴君)이란, 욕심(慾心)이 지나치고 바깥의 유혹(誘惑)에 빠진 자로, 재능(才能)은 탁월(卓越)했으나 여인(女人:말희·達己)의 유혹(誘惑)에 빠져 충신(忠臣:종고·기자 등)의 말을 듣지 않고, 폭정을 휘두른 하(夏)나라 걸왕(桀王)과, 상(商)나라 주왕(紂王)이 폭군(暴君)의 대명사로 불린다. 맹자(孟子)는, 이런 무능(無能)하고 제멋대로인 임금의 정치는 곧 혁명(革命)을 부른다고 설파했다. 못을 위하여 고기를 몰아주는 것은 수달이다. 나무숲을 위하여 참새를 몰아주는 것은 새매다. 탕무(湯武)를 위하여 백성을 몰아 준 자는 걸주(桀紂)라 했다. (爲淵驅魚者獺也 爲叢驅爵者鸇也 爲湯武驅民者 桀與紂也) 결국,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인 지도자의 무능(無能)과, 폭군(暴君)의 독선과 불통에 따른 폭정(暴政)으로, 백성을 도탄(塗炭)에 빠뜨렸다는 점에서는 폭군(暴君), 혼군(昏君, 혹은 암군(暗君), 용군(庸君) 모두 다 같다고 했다.

혼군(昏君)은 백성의 힘을 다 빼앗아 정치를 잘하려는 뜻은 있지만, 총명(聰明)하지 못해 현명(賢明)한 자 대신 간사하고 무능하거나, 신뢰(信賴)할 수 없는 자들을 기용해서 패망(敗亡)하는 군주(君主)를 말한다. 그 예로, 진(秦)의 호해와 진(晋)의 혜제를 들고 있다. 진(秦)의 호해는 환관 조고에 속아, 아방궁(阿房宮)공사를 만류하는 충신들에게 ‘내 맘대로 하고 싶어서 황제(皇帝)가 됐는데 무슨 헛소리냐’고 일축(一蹴)했다. 사마천(司馬遷)은 이를 두고 ‘인두축명(人頭畜鳴:사람의 머리를 하고 짐승의 소리를 내 뱉는다’)이라 했다. 진(晋) 혜제는 큰 흉년(凶年)이 들어 사람들이 굶어죽자 “왜 고기죽을 먹지 않는 거냐(하불식육미:何不食肉靡)”고 고개를 갸웃했다니 기(氣)가 찰 노릇이다.

용군(庸君)은, 유약(懦弱)하고 과단성이 없어, 구태(舊態)만 되풀이 하다가 나라를 망치는 지도자라고 했다. 후한(後漢) 마지막 황제인 영제, 촉한(蜀漢)의 후주(後主) 유선을 들고 있다. 후한(後漢) 영제는 황제권을 강화하고자 미천한 가문을 기용했다. 황제권을 위협하는 것을 견제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고, 호족들은 스스로 권력자가 되어 황제를 허수아비로 가지고 놀다 후한(後漢)은 멸망하게 되었다. 촉한(蜀漢) 유선은, 아버지 유비(劉備)처럼, 유능하고 타고난 총명으로 나라를 운영할 길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위(偉)나라에 멸망하게 되었을 때, 황족(皇族)인 유(劉)씨 가문을 지키고자, 의심 많고 잔인한 사마소 앞에서 바보 연기를 했다. 어쩔 수 없이 치욕(恥辱)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멍청한 군주였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정치의 지향점은 물론 요순시대(堯舜時代)일 것이다. 임금이 누구인지 몰라도 잘 먹고, 잘사는 격양가(擊壤歌)가 울려 퍼지는 이상사회(理想社會)가 바로 요순시대(堯舜時代)이며, 그런 정치를 한 이가 바로 성군(聖君)인 것이다. 그러나 요순(堯舜)의 정치를 따라가기는 언감생심이 아닌가. 군주(君主)들은 요순(堯舜)과 같은 성군(聖君)은 아니더라도 성군(聖君)을 지향하는 군주(君主)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박근혜정권의 사자성어를 보면, 나라가 망하지 않고 굴러가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따름이라한다. 순리를 거슬러 행동하는 도행역시(倒行逆施), 빤한 거짓말로 본질을 호도하는 지록위마(指鹿爲馬)정권, 천지에 먹구름을 몰고 다니는 혼용무도(昏庸無道)로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선정된 혼용무도 외에도, 겉보기에는 맞는 것 같지만 실지는 그렇지 않다는 사시이비(似是而非, 14.3%), 못의 물을 모두 퍼내어 물고기를 잡는다는 뜻의 갈택이어(竭澤而漁, 13.6%), 달걀을 쌓은 것 같이 위태로운 형태라는 말로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뜻의 위여누란(危如累卵, 6.4%)은 모두 위태롭고 혼란스러운 2015년, 한국사회를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성어들이다. 지혜로운 리더십의 부재에 가슴 아파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줄 지도자는 영영 나타나지 않을까 염려도 되지만, 그래도 2016년에 다시 희망과 기대를 걸어 본다. 온 국민이 믿고 따를 수 있는 명군(明君)의 정치를 만들어 갈, 현명(賢明)한 신하(臣下)라도 나타나기를 바람은 나만의 망상이 아니었으면 한다.

‘남는 것으로 부족분을 채우고, 짧은 것은 긴 것으로 이어나가는 사람이 현명한 임금(이유여보부족:以有餘補不足, 이장속단지위명군:以長續短之謂明君)’이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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