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회

2016.01.11 07:15

신효선 조회 수:65

신우회(辛友會)

꽃밭정이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신효선

신우회(辛友會) 모임이 있는 날이다. 친정 사촌남매 부부가 일 년에 한 번씩 모여서 하룻밤을 같이 보내는 날이다. 일 년 동안 있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 정담을 나누며 보낸다. 몇 십 년 전부터 가져온 모임이다. 어떤 모임이든 함께 한다는 그 자체가 보람 있는 일인 것 같다. 이날을 기다리다 만나면 일 년 만의 만남이지만, 이산가족상봉 못지않게 반가움이 넘친다. 서로가 건강은 어떠한지, 집안에 좋은 소식은 있는지…….

남편이 오지 않는다. 지금쯤 출발해야 하는데……. 기다리다 지쳐 화가 난다. 하던 일을 조금 안 하고 빨리 오면 좋을 텐데, 끝까지 자기 일을 다 하고 온다. 형제들은 서울, 고창, 정읍. 전주에서 온다. 모임 장소에 도착하니 40분쯤 늦었다. 언니, 형부, 오빠, 동생들이 거의 참석했다. 저녁을 먹고 우리는 예약해 둔 부안군 ‘농협생명변산수련원’의 객실 2개에 짐을 풀었다.

처음에 이 모임을 하게 된 동기는 경향각지에 흩어져 사는 젊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정월 명절에 어른들에게 세배도 할 겸 모임을 갖게 됐다. 같은 마을에 사시는 큰집인 아버지, 다음은 둘째작은집, 그다음은 셋째작은집에서 모임을 가졌다. 그러다가 셋째작은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나이 많은 형제 순으로 돌아가며 만났다. 나이가 들어가니, 이제는 집에서 모임을 갖는 게 서로 부담스러워 회비를 내고 밖에서 모인다. 일 년에 한 번씩 모여 하루 저녁 이야기꽃을 피우며 나름대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다.

언니들의 구수한 정담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젠 나이가 70에서 80을 향하는 언니들. 언제까지 이렇게 모일지 모르니 재미있게 지내자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된장 담는 이야기가 나왔다. 사촌 언니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둘째작은집 둘째언니는 언제나 명랑하고 음식을 잘 만들었다. 묵은 된장이 짜면 거기에 보리죽을 걸쭉하게 쑤어 넣으란다. 그러니 또 이쪽에서는 그냥 콩을 삶아서 넣으면 좋다고 한다. 둘째작은집 언니 왈 “정지과 교수가 강의하는데 웬 말이 많아?” 하며 당신의 주장을 내세워 한참을 웃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옛날 이야기꽃이 피었다. 둘째 작은집 둘째 언니는 솜씨가 좋아 작은집 형제들 김치와 간장, 고추장을 다 담아 서울로 보낸다. 그런데 작년부터 암과 투병하는데, 너무나 성격이 좋고 낙천적이라 많이 호전되었다.

아버지의 형제는 남자만 세 분이시다. 장남이신 아버지 자손은 4남 4녀, 둘째작은아버지는 3남 4녀, 셋째작은아버지는 2남 2녀이다. 부모님들은 모두 돌아가셨지만, 형제들은 형부 한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건재하시다. 모임이 있을 때는 부득이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모두가 일 년 동안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밤을 새운다. 유독, 둘째작은집 형제가 재미있다. 노래도 잘하고 이야기도 재미있게 한다. 우리 집 형제는 별로 재미가 없다. 8남매 모두가 하나같이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다. 반면에 밖에서 들어온 올케며, 여자 형제 남편들은 잘 어울린다.

어머니는 조카들한테 매우 잘하셨단다. 조카들이 오면 빈손으로 보내지 않고 된장, 고추장, 집장을 한 보따리씩 주셨나 보다. 당신네 어머니 이야기보다 큰어머니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친정동네에 오면 큰집으로 먼저와 큰어머니한테 안긴단다. 새삼 어머니 생각이 난다. 나는 어머니보다 아버지에게 더 정이 있었다. 아버지는 딸 중에서 나를 더 예뻐해 주셨다. 어느 날은 내가 직장에서 올 때쯤 어머니가 대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셨다. 웬 일인가 했더니, 지금 아버지께서 화가 많이 나 있으니, 나보고 아버지 화를 풀어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나를 보시면 슬며시 화를 푸신다. 그냥 옆에 가서 오늘 있었던 이야기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버지는 언제 화가 났느냐는 듯 웃으셨다.

사촌 남동생은 결혼해서 딴살림을 차릴 때, 아버지가 쌀 20kg을 주시면서 “잘 살아라.” 하신 게 잊히지 않는단다. 그런데 남아선호사상이 유별나게 깊으신 아버지께서는 당신 딸들에게는 그러한 아량이 없으셨다. 우리 형제들이 이렇게 모여서 이야기하며 보내는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

“언니, 오빠, 동생들! 내년에도 이렇게 웃으며 만나요!”

하면서 돌아서는 마음이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2015. 1. 11.)

나의 아버지는 17살에 결혼하여 홀아버지를 모시고, 고생하며 살림을 일으키고 동생들을 분가시켰단다. 그런 동생들을 먼저 보내시고 90세에 돌아가셨다. 부모님들이 돌아가신 뒤로는 따뜻하고 꽃피는 계절로 모이는 시간을 바꾸었다. 부모님들은 가셨지만, 사촌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난날을 이야기하며, 화목하게 지내게 한 것도 큰 유산이 아니겠는가. 부모님들이 남겨준 유산을 오래오래 지켜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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