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케냐 여행기(3)

2016.01.15 08:10

신효선 조회 수:71

키베라 빈민가를 찾아서

-아프리카 케냐 여행기(3)-

꽃밭정이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신효선

마사이 마라 사파리 여행을 마치고 나이로비로 돌아왔다. 여행을 안내한 가이드를 돌려보낸 뒤 점심을 먹고 키베라(Kibera)를 방문하기로 했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 있는 키베라는 필리핀의 ‘톤도(Tondo)’, 브라질의 ‘호싱냐 파벨라(Rochinha Favela)’와 더불어 UN이 지정한 세계 3대 빈민가 중 하나다. 동아프리카의 관문이자 야생동물의 낙원으로 유명한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인근에 자리한 키베라는 여의도만 한 크기로 주민 100만 명 정도의 세계 최대의 빈민가이다. 나이로비의 산업화로 수많은 사람이 몰려왔지만, 그들을 수용할 일자리가 부족하여 빈민촌이 형성된 것이다. 양철지붕의 판잣집과 흙집에는 상하수도 시설이 전무한 데다, 위생시설의 부족으로 오물이 시내 곳곳에 넘쳐흘러 각종 질병이 창궐하고 있었다. 시민들 대부분이 하루에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원래는 매스컴에서 보던 쓰레기더미 있는 곳을 가고자 했으나, 위험하다며 이런저런 핑계로, 결국 민박집 주인이 운영하는 OOO0교회로 출발했다. 사파리 여행 중 스케줄 문제로 전화할 때, 키베라를 방문하려면 무언가를 준비해야 한다며, 처음엔 1인당 20불씩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사파리 여행 중 예정에 없던 외국인 여행객 2명을 합류시키는 등 약간의 문제가 생기자, 선교원장께서 무조건 무상으로 원하는 대로 안내해주시기로 했다. 그래도 어려운 사람들을 후원하는 마음으로 가지고 있던 모든 과자를 털어 모으고, 공동비용 중 남은 돈 10만 원 정도를 방문하는 교회에 기부하도록 모두 내주었다. 우리가 내놓은 과자를 교회에 온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여행을 알선하고 민박과 식당을 운영하며, 여행객으로부터 후원을 받아 선교활동도 하고 생활도 유지해가는 것 같았다.

우리는 식당 직원들과 한국에서 연수차 왔다는 학생들과 식당의 차를 타고 갔다. 현지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려 한참 걸어가니, OOO0교회라는 한국어로 쓰인 천막 교회가 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10평정도 될 만한 공간에 의자와 강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교회에는 어린아이들 열대여섯 명이 모여들었다. 코흘리개 어린아이들의 표정도 다양했다. 초점 흐린 눈동자에 무표정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앞니가 서너 개나 빠진 채 우리에게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사진을 찍어 달라는 포즈를 취하는 밝은 아이도 있었다. 함께 간 선교원장이 우리에게 교회 주변의 여건과 운영 실태를 설명해주었다. 선교원장의 말씀과 기도가 끝나고 나누어주는 과자 몇 개씩을 받아 쥐고 좋아하는 모습들이 참 안쓰럽고 짠했다. 그 아이들은 과자 한 개를 얻기 위해 교회를 찾아오는 거 같았다. 한국전쟁 후 구호물자에 의존하며 지내온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찡했다. 남편은 사진을 한 컷이라도 더 찍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바빴다.

식당에서 함께 온 직원들과 학생들이 주변 쓰레기를 치우며 봉사활동을 폈다. 식당의 현지 청년 직원들은 이곳 교회를 다니면서 직원으로 채용되었다 한다. 그중에는 이곳에서 소위 주먹대장이라는 젊은이가 교화를 받아 이 교회의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근처에 있는 그 청년의 집을 방문했다. 한때는 부자로 살았는데 어쩌다 이 빈민촌에 살게 되었다 한다. 그래도 그 집에는 TV도 있고 침대도 있어 집안이 부자 티가 났다. 할머니와 부모들도 집 안에 있어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현지 직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조심스레 빈민가 거리를 둘러보았다. 웬 여자가 길바닥에 반듯이 누워 있는데, 사람들이 빙 둘러서 무심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는지, 아니면 마약이라도 하고 정신을 놓은 건지 모르지만, 꼭 죽은 사람 같아 보였고, 일행 중에선 누군가가 죽었다고도 했다. 남편은 구석구석 사진을 찍고 싶어 했지만, 찍지 말라는 신신당부가 있어 꾹 참았다. 잘 못 걸리면 홀딱 벗겨서 쫓아낸다고 했다. 이런 골목에도 대낮부터 요란한 음악이 나오는 술집도 있고, 차마 보기 힘든 모습들을 뒤로하고 골목을 빠져나왔다. 저들이 어떻게 하루하루를 연명하는지 참으로 궁금하고 가여웠다. 그런가 하면 빈민가 바로 위쪽에 도로를 개설하고 배수시설을 하지 않아서 비가 오면, 모든 물이 낮은 지대에 있는 빈민가로 흘러내려 물바다가 된단다. 그리고 도로 건너에는 대규모 아파트를 지어 공무원들에게 분양하여 살고 있었다. 빈부차가 너무도 극명해 보였다.

어려서부터 검은 대륙으로 듣고 배웠던 아프리카는 아직도 가난과 질병과 무지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적도가 대륙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북 온대에서 남온대를 포함하는 날씨, 지구 지면의 20%에 달하는 광대한 면적, 세계 인구의 15%에 육박하는 54개 국가나 된다. 흑인 노예 조상들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채, 오늘도 소외되고 버림받고 굶주린 그들의 삶의 고리는 언제나 끊어낼 수 있단 말인가? 독재자들의 착취와 권력을 탈취하려는 쿠데타와 내전이 끊이지 않는 대륙. 그런가 하면 지구촌 다른 편에선 먹을거리가 넘쳐나 비만을 걱정하는 이들은 도대체 그들보다 무엇을 얼마나 잘 했더란 말인가? 언제까지 우리는 불쌍한 그들에게 눈 감고 모른 체해야 한단 말인가?

골목을 벗어나 안도하며 차를 타자, 과자를 입에 물고 좋아하던 철부지들의 눈망울이 눈에 선히 떠올라 가슴이 멍했다.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247
어제:
203
전체:
231,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