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와 시를 읽다

                                     


                                                               조옥동



여름날 어느 오후, 시집을 펼쳐 들다

작은 그림자 바삐 앉아 함께 읽자한다

괘씸하여 움켜잡으려니

이리저리 행간을 바삐 날아

움직이는 커서 하나

주위를 낮게 날며 손발을 부비고

조롱하는지 애원을 하는지 커다란 눈으로

파리 한 마리 동정을 살핀다


나에게 너는 혼신의 오체투지

다가옴의 날갯짓으로

너에게 나는 사랑과 미움이 속셈하는

기다림의 손짓으로

서로의 은유가 되어

왜 잠시잠간 처음 만나, 하필이면

거짓말보다 어려운 시세계를 넘보는지

여하간 잡아 앉히고 물어 볼 일이다


둥근 너의 눈망울은 두리번거리기만

어울리지 않아

너는 마음냄새를 몰라서

말도 가락도 없이 앉았던 자리 겨우

마침표 하나 남겨놓고 떠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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