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삼절을 만나러 박연폭포를 찾았더니

2016.01.26 18:10

김학 조회 수: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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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삼절을 만나러 박연폭포를 찾았더니
- 5백년 고려의 수도 개성 방문기(1) -
김 학

서울에서 개성까지는 고작 70킬로미터, 1시간 30분이면 너끈히 달려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다. 초등학교 때부터 역사시간에 귀가 아프도록 들었던 고려의 도읍 개성, ‘왕건’ 등 대하드라마나 영화 또는 소설에서 눈이 아프도록 보았던 왕도 개성, 그 가까운 개성을 찾아가는 데 너무나도 오랜 세월이 흘렀다. 삼천리금수강산의 허리가 두 동강으로 잘린 뒤 갈 수 없던 북녘 땅. 그 북녘이 금강산에 이어 개성을jjj 슬며시 문을 열자, 우리는 얼마나 환호작약했던가.

2008년 8월 12일, 난생 처음 개성을 찾아가던 그날은 새벽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남녘에도 북녘에도 삼천리금수강산 구석구석에도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기쁨의 눈물이자 감격의 눈물이었을까.
송도삼절을 만나러 5백년 고려도읍지 개성을 찾아가는 날, 새벽 2시 전주를 출발한 관광버스는 전북의 문인 17명을 태우고 북쪽으로북쪽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남과 북이 하나의 조국을 세워야 한다는 뜻을 품고 38선을 넘었던 백범 김구 선생을 떠올리며 나도 북으로 가고 있었다.
차창 밖은 짙은 어둠에 싸여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빗물이 끊임없이 차창을 두드리는 건 마치 통일의 문을 노크하는 우리 겨레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개성에 간다는 설렘으로 어젯밤 잠을 설쳤지만 전혀 피곤하지도 않았다.

도라산 남측 출입국사무소[CIQ]에서 수속을 마치고 대원관광 7호차에 타고 군사분계선을 지나 북측 출입사무소에 도착하여 또 수속을 밟았다. 외국 여행 때 공항에서 겪었던 입국심사나 다를 바 없었다. 그곳에 들어서자 귀에 익은 ‘반갑습니다’란 북한노래가 은은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북측 안내원 3명이 우리 버스에 올랐다. 리춘성 안내원이 마이크를 잡더니 반갑게 인사를 하고 개성의 유래를 설명해 주었다. 다른 두 안내원은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채 얌전히 앉아 있었다.

우리를 태운 버스가 개성시내로 접어들었다. 개성의 들녘은 남녘이나 마찬가지로 짙은 초록빛 물감을 뿌려놓았다. 논에서는 벼가 익어가고, 척박한 밭에서는 영양실조로 키가 자라지 않은 난쟁이 옥수수들이 즐비했다. 저 옥수수들이 잘 여물어야 북한 동포들의 배고픔이 줄어들 텐데……. 저러니 우리가 비료를 보내주어야겠구나 싶었다. 개성은 인삼의 고장이기에 인삼밭이 많을 줄 알았는데 꼭 한 군데서밖에 보지 못했다. 차창 밖의 단독주택이나 아파트는 대부분 시멘트 건물인데 오랫동안 도색을 하지 않아 우중충해 보였고, 거리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남녀시민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개성의 송악산은 고려 태조 왕건을 품어서 키운 명산이다. 옛날 판문점에서 개성을 바라보니 이 송악산의 모습은 톱날 같았는데 막상 개성에서 그 산을 바라보니 바위가 듬성듬성 드러난 민둥산이었다.

개성에서 처음 찾은 곳은 그 이름도 유명한 박연폭포. 개성시 북쪽 16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천마산과 성거산 사이의 웅장한 화강암 암벽에서는 하얀 무명베 같은 폭포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높이가 37미터요 너비가 8미터라는 박연폭포는 비가 꽤나 내렸는데도 그렇게 웅장해 보이지 않았다. 이 박연폭포는 금강산의 구룡폭포, 설악산의 대승폭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폭포라는데 내가 보기에는 내변산의 직소폭포와 우열을 가리기조차 어려울 것 같았다.
박연(朴淵)은 폭포 위쪽에 있는 직경 8미터의 바가지 모양으로 패인 연못인데, 이 연못에 담겼다가 떨어지는 물이 바로 박연폭포다. 폭포가 떨어지는 바로 밑에는 고모담이라는 큰못이 있고, 그 동쪽 언덕에는 폭포의 절경을 감상하기 좋은 범사정이라는 정자가 세워져 있으며, 서쪽에는 용바위라는 둥근 바위가 못 속에서 윗부분만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용바위에는 황진이가 폭포의 절경에 감탄해 머리를 붓 삼아 썼다고 알려진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이 박연폭포 주위에는 봄이면 진달래, 여름에는 우거진 녹음, 가을엔 단풍, 겨울엔 설경 등 철따라 변하는 모습이 아주 일품이라고 한다.
이 폭포 위에는 고려 때 쌓은 둘레 약 10킬로미터의 대흥산성(大興山城)과 함께 북측의 국보문화유물 125호로 지정된 관음사가 있다. 그러나 비가 많이 내려 관음사 가는 길이 망가져서 대흥산성만 둘러보고 내려와야 했다. 어서 오라며 잘 왔다며 목이 쉬도록 환영의 노래를 불러주는 매미들이 참으로 고마웠다. 북녘의 매미소리는 남녘의 매미소리나 다를 바가 없었다.
송도삼절을 만나러 개성에 들렀더니 가냘픈 박연폭포의 물소리뿐 황진이의 거문고 소리나 화담 서경덕의 시조가락을 들을 수 없어 아쉬웠다. 언젠가 통일이 된 뒤에는 이 골짜기를 송도삼절의 풍류체험장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슴에 품은 채 자리를 뜨고 말았다.

(2008.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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