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이야기

2016.01.30 09:51

정남숙 조회 수:68

원숭이 이야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2016년은 병신(丙申)년이다. 올해엔 ‘붉은 원숭이해’라고 한다. 원숭이 하면 제일먼저 떠오르는 구전동요(口傳童謠)가 있다. 어릴 적 특히 여자 친구들이 마당이나 운동장 한쪽 모퉁이에서 편을 갈라, 고무줄놀이나 줄넘기를 할 때 언제나 부르던 노래다. 우연히 원숭이애기를 하던 우리는 같은 세대이어서인지, 누군가 먼저 원숭이 동요를 부르기 시작하니 순간 너나없이 따라 불렀다. 오랜만에 불러보는 원숭이 노래지만 가사를 기억하고 있어 끝까지 신나게 불렀다. ‘원숭이 엉덩이(똥구멍)는 빨개’로 시작되는 노래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원숭이로부터 시작해서 백두산까지 무엇이나 갖다 붙이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상상력을 키우는 노래로서 동심을 자유로운 놀이와 연관시켜 동요처럼 불렀다. 그러나 놀이로만 끝나지 않고, 백두산에서 그치지 않았다. 나라사랑까지 자연스럽게 동심(童心)에 스며들 수 있도록 ‘대한의 노래’로 이어진다.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 무궁화 이 강산에 역사 반만년/ 대대로 이어나갈 우리 삼천만/ 복 되도다 그 이름 대한이로세.’

이렇듯 낱말을 이어가며 재미있는 놀이에 맞추어 노래로 부르게 하고 애국심(愛國心)까지 심어준 구전 동요다. 원숭이 엉덩이가 왜 빨간지 옛날 얘기는 많다.

게와 원숭이가 떡을 좋아했다고 한다. 게와 원숭이는 떡을 같이 먹기로 했다. 그런데 원숭이는 재빨리 떡을 가로채가지고 나무위로 올라가버렸다. 원숭이는 나무위에서 게를 놀려대며 혼자 먹다가 떡을 땅에 떨어뜨렸다. 나무 밑에서 기다리던 게가 그 떡을 얼른 주워 가지고 게 구멍 속으로 도망가 버렸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내려와 게 구멍 앞에서 사정을 했으나, 게가 듣지 않고 돌려주지 않았다. 속이 상한 원숭이는 엉덩이로 게 구멍을 막고 방귀를 뀌었다. 그때 화가 난 게가 앞발로 원숭이의 엉덩이를 꼬집어버렸다고 한다. 때문에 오늘날까지 원숭이엉덩이는 게에게 꼬집혀서 털이 없어져 빨갛고, 게 앞발에는 아직도 원숭이엉덩이 털이 그냥 붙어있다는 이야기다. 욕심을 부리다 받은 상처인 셈이다.

요즘 아이들은 얼마나 영특한지 이런 이야기는 듣고 믿으려 하지도 않는다. 막연한 전설보다 현대적 이론이나 과학적 근거를 들어야 이해한다. 사실은 모든 원숭이의 엉덩이가 빨간 것은 아니라 한다. 암컷만 발정기 때 2주정도 빨갛게 부풀어 오르고 수컷을 유혹하기 위해서라 한다. 동국무원(東國無猿)이라 하여 우리나라에는 원래 원숭이가 없었다. 우리가 원숭이를 가까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일본(日本)이 우리 조선의 왕궁, 창경궁(昌慶宮)을 격하시키기 위해, 창경원(昌慶園)이라 부르는 동물원(動物園)을 만들어 일본원숭이를 들여온 이후일 것이다. 놀이시설도 유원지도 별로 없던 시절, 서울을 구경하려는 시골사람들은 물론 서울사람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구경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 중 원숭이막사는 어른이나 아이 구분 없이 언제나 최고의 인기장소였다.

원숭이는 속담(俗談)에도 많이 등장한다. ‘원숭이 흉내 내듯 한다.’는 속담은, 생각 없이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함을 비유하는 말이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아무리 능숙한 사람이라도 실수(失手)할 때가 있다는 말이다. ‘원숭이 이 잡아먹듯 한다.’는 원숭이가 늘 이를 잡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잡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 체하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눈속임이나 건성으로 하는 경우를 비유하며.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바꾸는 말로써, 당장 눈앞의 차이만 알고 그 결과가 같음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견원지간(犬猿之間)’은 서로 앙숙인 사이를 표현하는 말이다. 개와 원숭이 사이는 왜 나쁠까. 개도 야생동물인 시절 몸집이 작은 원숭이를 만만하게 본 모양이다.

원숭이는 또한 재앙(災殃)과 악귀(惡鬼)를 쫓는 벽사(辟邪)의 상징이다. 궁궐 지붕 위를 장식하는 잡상중의 하나로 궁궐을 수호했다. 한자(漢字)로 원숭이‘후(猴)’자는 제후‘후(侯)’와 발음이 같다하여 선비를 지칭하기도 한다. 그래서 부와 명예의 상징으로 보았다. 그림이나 연적(硯滴) 등, 문방사우(文房四友)에 원숭이를 그려 넣어 입신양명(立身揚名)하기를 기원했다. 원숭이 ‘원(猿)’은 생김새를 보아 큰 털옷 입은 모습을 나타내고, 원숭이 ‘저(狙)’는 긴 손으로 움켜잡는 습성에 따라 조삼모사(朝三暮四)에 쓰이는 약간 미욱한 것으로 표현되며, 원숭이 ‘우(禺)’는 발자국으로 구역을 나타내며 무리를 지어 사는 집단 원숭이로 풀어 보았다. 그러나 원숭이는 포유류 중 가장 진화된 부류인 것이다.

서유기(西遊記)는 명(明)나라 오승은(吳承恩)이 지은 소설이다. 화과산(花果山)의 돌에서 태어난 손오공은 도술(道術)과 변신술(變身術)을 익혀서 천계(天戒)를 어지럽히다가 석가여래에게 붙잡혀 오백년 동안 바위산에 갇혀 벌(罰)을 받는다. 그러다가 삼장법사(三藏法師)를 도와 불경(佛經)을 찾아오라는 명을 받고, 인도로 떠나게 되면서 온갖 마귀들과 싸워 결국 불경(佛經)을 입수하게 된다. 이후 중국에서 원숭이가 손오공처럼 잡귀(雜鬼)를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어 원숭이를 숭배(崇拜)하기도 했다. 서유기속 손오공은 말썽을 부려 벌을 받기도 하지만 하늘과 땅을 오가는 신통력(神通力)을 발휘하는 등 꾀가 많으며 다재다능(多才多能)하고 영민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원숭이는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이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로도 자주 등장해 어린이들이 좋아한다. 이 때문에 동물원 원숭이사육사 앞은 항상 어린아이들로 북적인다. 120년 전 병신년의 구전민요를 인용(引用)해 본다.

‘갑오세(甲午歲) 가보세, 을미(乙未)적 을미적 거리다 병신(丙申)이 되면 못 가리.’

1896년 병신년(丙申年), 치욕적인 고종(高宗)의 아관파천(俄館播遷)을 비유한 말인 것 같다. 2016년 병신년(丙申年)에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하여 평화롭고 복(福)된 대한민국이 되도록 원숭이로 시작되는 구전동요(口傳童謠)가 널리 불리어 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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