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을 닦으며

2009.01.26 12:50

고현혜(타냐) 조회 수:53

아가의 배꼽을 알코올로 닦으며
배꼽에서 나를 낳으셨다는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어떻게 여기서 아기가 나와」
어린 나는 어머니의 배꼽을 만자작 만지작 거리며 물었다.

「으응, 아가 날 때가 되면 배꼽이 커져」
어머니는 벽을 바라보며 대답하셨다.

난 바로 동네 계집아이들을 모아놓고 소근거렸다.
「난 애기가 어디서 나오는지 안다.」
「이디서?」
  「그건 말야, 배꼽에서 나온다.」
「정말?」
  「정말.」

나도 모른다.
그때부터 아기를 낳아 본 지금까지도
왜 난 아기가 배꼽에서 나온다고 신화처럼 믿는지는.

어머니가 배꼽에서 나를 낳으셨듯
나도 배꼽에서 또 배꼽으로 아기를 낳은
아기를 낳았건만
미역국도 안 끓여 주시고
어디 가셨나

내가 배꼽에서 아기를 낳으면
키워주신다더니
어디 가셨나
어디 가셨나
우리 엄마.

아가의 배꼽 위로 알코올 같은 내 눈물이
뚝 뚝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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