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아저씨의 이민

2009.01.27 11:52

한길수 조회 수:37

우연히 횡단보도에서 만났다
괭이와 삽 잡던 군살도 여전한데
정정하시던 예전 모습 간데없고
휠체어 바퀴에 좌우로 흔들리는 몸
진천 집 떠나 낯설고 물 설은 이국
애들 따라 이민 와 잃어버린 말, 말
아들 가방가게 일손 거들고 싶어
덥석 손님 손잡고 옆집 달려간다
말 대신 웃음으로 통역해 달라던
손짓발짓 월세내고 잘 살아오셨는데  

집 한 칸 의지할 곳 없어도 가고 싶어  
외진 곳 빈 땅이라도 판자 올려놓고
호박 심으며 밭 일구고 살고 싶다던
오도 가도 못하고 가슴 치며 우신다
“며, 며느리, 며느리가 안 와.”
멀쩡한 아들은 술로 날밤 세우고
폐인 다 되어도 안 돌아오는 며느리
고향 집 팔아 온 것 월세로 날아가고
사는 게 잘게 다져진 햄버거 같은데
방 두 칸 서민 아파트로 이사 갔다


비 개인 날 햇볕으로 훌훌 턴 아들
밤 청소에 주차장 관리하며 돈벌어
다이몬드 바에 집 사고 살만하더니
삼 층 건물 페인트칠하다 떨어져
허리 다치고 똥물까지 먹였지만 허사
불법체류자 단속으로 빠듯해진 살림
가방가게 앉아 하늘 보며 소일 삼는데
희여 진 얼굴에 자라는 머리는 백발
눈물 훔치는 손수건이 지독하게 푸르다

불현듯 찾아온 중풍으로 반신 불구되고
정부보조 연금마저 삭감으로 힘겨운 삶  
“아저씨, 고향도 예전 같지 않데요.”
휠체어 앉아 하늘 보며 그리워하면서도  
눈 밟히는 아들 못 믿어 가로 젓는 고개  
병원 다녀오다 고향 만났다며 웃으시는
쏙 빼닮은 고향 하늘이 서럽게 그리운
힘겨운 말보다 듣는 가슴이 더 퍽퍽하다
눈에 선한 논두렁 따라 핀 코스모스    
코끝 찡하더니 이내 주르륵 내리는 비


              <빈터> 제 6집 동인지 '나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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