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우렁각시

2016.02.15 09:06

박세정 조회 수:119

나와 우렁각시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박세정

 

 

 

  길게만 느껴졌던 5일간의 설 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 출근하는 날  아침이다. 신호를 받으려고 대기하던 중, 잠깐 짬이 나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어젯밤부터 내린 비가 잠시 그친 사이, 먹구름이 점령한 하늘이 그들의 대이동으로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어느 곳에 비를 뿌리려고 저리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일까? 하늘을 가득 메운 회색빛 구름들을 쫓아서 나도 따라가 보았다. 빠르게 흘러가는 속도감에 보조를 맞추기 힘들었는지, 뒷목이 뻣뻣하게 당겨오면서 눈이 뻑뻑해져 고개를 숙이고 눈을 깜박거렸다. 바로 그때, 어딘가에서 울리는 경적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 가속 페달을 밟고 급하게 핸들을 꺾었다. 한 눈을 판 사이 신호가 바뀌었나 보다.

  몸은 진즉 그곳을 빠져나왔는데 마음은 아직도 그곳을 서성이고 있었던 것 같다. 며칠만의 출근인데도, 회사 주차장에 막 들어섰을 때 반가움보다는 불편함이 일었다. 좀 전에 보았던 먹구름에게 온통 마음이 빼앗겨 다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쫓기듯이 어딘가로 급하게 흘러가는 모양새가 나와 비슷한 것 같아서 짠하기도 했다. 나처럼 출근하는 길일 수도 있겠고, 어딘가로 외출하는 길일 수도 있겠다는 재미있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직장생활을 한 지도 어느새 이십오 년째 접어들었다. 올해 내 나이가 마흔 여섯이니, 인생의 절반 이상을 직장에서 보낸 셈이다. 이렇게나 오래 다니게 될 줄이야! 지나온 직장생활을 뒤돌아보노라니, 가정과 직장을 병행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버거웠던 것 같다. 오죽하면 직장여성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또 다른 직장으로 출근한다고 표현했겠는가? 회사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밀린 집안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 돌보기도 소홀히 할 수 없어서 육아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 했다. 잠 잘 시간을 줄여가며 이 모든 일을 했기에 나는 늘 잠에 굶주려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하고 살았는지 아득하기만 하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잔병치레를 퍽 많이도 했다. 유독 기관지가 약한 아이는 찬바람이 불면 감기에 걸려 병원 신세를 졌다. 고등학생이 된 뒤로는 그때만큼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챙겨 줘야 할 것들은 여전히 많다. 식사, 세탁, 학원시간에 맞춰 픽업하기, 아침에 깨워주기 등등. 직장에 다니는 엄마라고 해서, 이 중 일부만 해도 된다거나 이 모두를 안 해도 된다는 그런 특권은 없다. 나를 대신할 그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부터는 그마저도 내려놓았다. 누군가의 엄마를 대신할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깨우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해결해야 할 최대 고민은 업무처리보다도 집안일이었다. 사무실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자주 집을 해매고 다녔다. 무엇보다도, 종일 직장에 있다 보니 집안일을 할 시간이 없었다. 틈틈이 한다거나 막간을 이용해서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힘들면 주말에 한꺼번에 해야 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완벽에 가까운 나의 성격은 이를 용납하지 못한다. 빨래가 쌓여간다거나, 정리가 안 된 물건들이며 아무데나 던져진 옷가지들을 볼 때면 심사가 뒤틀린다. 그것들을 어떻게든 해 내려고 애를 쓰며 지난날들을 살아온 것 같다. 출근 시간에 맞추다 보면 집은 늘 엉망이었고 사무실에 앉아 있어도 뭔가가 개운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치워주지 않기에 퇴근해서도 똑같은 상황을 보아야했다. 일순간 짜증이 나면서 죄 없는 아이만 잡는 어리석은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도 우렁각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인 몰래 나타나서 집안일을 해 놓고 사라지는 설화 속의 우렁각시처럼,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작년 한 해 퇴근이 늦어지면서,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집에 다녀오는 일이 많아졌다. 특별히 볼 일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자주 다녀왔다. 차로 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삼 십 여분의 짧은 시간이 남는다. 그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집안일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주부라면 다들 잘 알 것이다. 청소기를 한 번 밀수도 있고, 설거지를 말끔히 할 수도 있는 시간이다. 아침에 세탁된 빨래를 건조대에 널 수도 있으며, 다시 또 세탁기를 돌릴 수 있는 시간이다. 어디 그 뿐이랴. 책상위에 어질러진 책들과 널브러진 옷가지들을 정리할 수도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렇게라도 몇 가지 일을 하고 나면 밤늦게 귀가했을 때 짜증이 덜 난다. 아침에 허겁지겁 몸만 빠져나온 난장판 같은 집이 아니라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집이어서 좋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 자신이 우렁각시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이 말이다. 설화 속의 우렁각시는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밥을 짓는 반면 나는 내 집에서 밥을 하고 청소를 한다. 만약 내가 혼자라면, 집안일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먹는 것도 최대한 간단하게 해결했을 것이고 나 혼자 사는 집이니 어질 일도 없어서 청소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혼자가 아니다. 가족들에게 엄마와 아내의 역할을 해주어야 하고, 가장 중요한 주부 역할도 멋지게 소화해 내야 한다.

  며칠 전,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집에 갔을 때 보았던 그 풍경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순간적으로 우리 집이 아닌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맑고 투명한 햇살이 집안 가득 흩어지고 있었다. 너른 거실 바닥을 운동장 삼아 신나게 뛰노는 그들에게서 깔깔대며 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흩어졌다가 다시 모였다가 할 때마다, 거실 바닥에 새겨진 다채로운 문양들이 어느 유명한 건축물에서 보았던 아라베스크보다도 더 찬란했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 넘나드는 바람도 집안 곳곳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바람 냄새가 어찌나 상큼하던지 겨울잠에 빠져 있던 내 영혼까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날 기세였다. 잊고 지낸 서정이 되살아나면서 잠자고 있는 오감도 깨어났다. 우리 집이 마치, 어디에선가 본 듯한 캔버스 속 천국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라도 신은 나에게 축복을 내려주시는구나!' 라는 생각에 가슴이 울컥해졌다. 그 날 나는, 직장에 다니는 우렁각시가 아니라 집에만 머무는 우아한 우렁각시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아둥바둥 살고 있는 내가 가여웠는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직장 동료에게서 생활도우미 한 분을 소개 받았다. 눈 딱 감고 한 번 써보라고 사정을 하는 통에 마음이 기울일 뻔 했으나 전화는 걸지 않았다. 이 기회에 우렁각시를 돈으로 한 번 사 볼까 하는 생각과 세 식구뿐인 집에 무슨 할 일이 있다고 하는 생각이 팽팽히 맞섰으나, 내 자존감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 연락까진 하지 않았다. 엄마이면서 아내이면서 주부이고자 하는 욕구가 내 안에서 강하게 꿈틀거리고 있었고, 핑계 같지만 그것이 또한 나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직은 내가 젊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멀리 계신 친정어머니께서 아주 가끔 우리 집에 오셔서 우렁각시 처럼 집을 말끔히 치워주시거나 맛있는 반찬을 해 놓고 가신다는 점이다. 때론, 딸과 남편이 번갈아가면서 우렁각시를 자처하기도 하니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동안은 내가 우렁각시 노릇을 해야겠다. 더 늙으면 이마저도 못할 것이 뻔하니, 기쁜 마음으로 해야겠다. '요즘 우렁각시들은 직장까지 다니느라 아주 바쁘데요!' 라고 변명 아닌 변명도 한 번씩 흘려보내야겠다.

                                                                                                                                               (2016.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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