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요요
2009.02.18 01:43
“요요요요”
1983년 KBS 방송국에서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이 한창 진행될 때였다. 온 나라가 울음바다가 되어 만나는 사람마다 퉁퉁 부은 눈을 보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울 그 때. 방송을 보던 오빠가 나에게 하는 말이다. “만약 너와 내가 헤어졌다면, 얼굴이 닮았나, 어디에 살았었나, 부모님의 이름이 무엇이냐, 그런 것은 물어볼 필요가 없지. 그냥 네가 나와서 ‘요요요요 요요......’만 부르면 우리는 틀림없이 만날 수 있을 거야. 아직도 나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으니까.” 오빠의 그 말은 나를 어릴 때로 데리고 가서 아련하게 그리움과 아픔을 자아내게 했다.
많은 언니 오빠들 중 막내 오빠는, 큰 언니 오빠들에 비해 나와 나이차가 별로 나지 않아 어릴 때부터 가장 가까이 지냈다. 그러한 오빠를 나는 늘 ‘꼬맹이 오빠’라 불렀다. 그러다 기분이 나빠지면 큰 소리로 “꼬맹이야”라고 해서 엄마에게 야단을 맞은 적도 많았다. 그 오빠와의 추억은 며칠 동안 얘기해도 다 못할 정도지만, 엄마를 함께 기다리던 일이 늘 제일 먼저 떠오르곤 한다.
유월의 해는 참 길었다. 특히 엄마를 기다리는 다섯 살 꼬마에게는. 지치도록 놀았다. 아침에 엄마가 준비해 둔 점심밥도 먹었다. 동네에서 함께 놀던 꼬마들이 엄마가 불러서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나는 부르는 사람이 없어도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더 이상 함께 놀아줄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아직 먼 산에는 하루 일을 끝낸 해가 초름히 걸려 있었다.
꾀죄죄한 얼굴에 먼지 가득한 손과 흙냄새 풍기는 옷을 입고 있지만 누구 하나 씻어주거나 닦아 줄 사람 없었다. 방에 앉아 네 살 위인 오빠와 엄마 기다리기 놀이를 했다. 곁방살이하는 우리 남매는 주인의 눈치 때문에 마음 놓고 마당에 나가 놀지도 못했다.
그때 엄마는 시장에 조그만 좌판을 펴놓고 약간의 푸성귀를 팔아 우리와 함께 살아갔다. 이미 다 자란 언니 오빠들은 대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아직도 고향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남은 가족들에게 마음 써 줄 여유가 없는 모양이었다.
“오빠, 오늘 엄마가 왜 이래 늦노?”
“글쎄 말이다. 벌써 해도 졌는데......”
“오빠, 나는 엄마 오믄 사탕 사달라고 할끼다.”
“엄마가 돈이 어디 있어가지고 니 한테 사탕 사줄끼고.”
“그래도 나는 엄마한테 사탕 사달라고 할끼다 머~.”
“나는 공책도 사야하는데......”
이미 초등학교에 다니는 오빠는 연필도, 공책도, 준비물도 사야했다. 그럴 때마다 가난한 엄마는 언제나 ‘다음’으로 미루어 가능한 늦게까지 끌고 가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엄마의 조그마한 주머니에서 돈이 나왔다. 그럼에도 철없던 나는 엄마가 오면 사탕 사달라고 조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비록 겨우 다섯 살이지만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저 한번쯤 읊어 보고 싶은 희망사항이 아니었을까.
“나는 엄마 오믄 과자도 사달라고 할란다.”
“또, 아까 경희가 신은 예쁜 신발도 사달라고 하고......”
“......”
이미 오빠는 대답이 없었다. 숙제를 하느라 책을 펼쳐 든 오빠에게 내 말이 들리지 않아서였을까? 나도 더 이상 오빠의 대답 같은 것은 기다리지도 않았다. 그냥 혼자의 놀이였다.
“나는 요요~~ 엄마 오면 요요~~ 사탕 사 달라 할 거다 요요~~”
“나는 요요~~ 엄마 오면 요요~~ 과자 사 달라 할 거다 요요~~ 나는 요요~~ 엄마 오면 요요~~ 예쁜 구두 사 달라 한다 요요~~ 나는 요요~~ 엄마 오면 요요~~ 나비리본 사 달라 할 거다 요요~~ 나는 요요~~..... 나는 요요~~...... 요요요요 요요 요요, 요요요요 요요 요요~~”
끝내 나는 울고 말았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엄마. 내가 갖고 싶은 것은 그 어느 것도 내 손에 쥐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이제 곧 해가 지면 호롱불 아래 오빠와 둘이서 엄마를 기다리는 무서운 일.
“숙아, 우리, 엄마 오는 가 마중 가 볼래?” 울고 있는 어린 동생이 가여워, 역시 아직 어린 오빠가 나를 등에 업고 논둑길을 따라 엄마 마중 나갔다. 산꼭대기에 대롱거리며 걸려 있던 해가 우리 두 남매의 가는 길에 마지막 힘을 다하여 밝혀주고 있었다. 그러나 곧 어두움은 조금씩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좁다란 논둑길은 어린 동생을 작은 등에 업고 가는 오빠의 발에도 아슬아슬한 넓이였다.
어둑한 논둑길 저 멀리에 희미한 그림자가 보였다.
“숙아, 저기 엄마다.”
“엄마~~~” 하며 우리는 반가움에 목이 터져라 소리 높여 ‘엄마’ 이중창을 불렀다. 안 그래도 아까부터 저 먼 논둑 끝자락에 어른거리는 작은 물체가 마음이 쓰인 엄마는 우리 남매의 이중창에 놀라움과 반가움, 그리고 염려로 맞이했다.
“집에 있지 어두운데 왜 나왔노” 약간은 나무라는 소리에, “숙이가 엄마 기다리다가 울어가지고......”라는 오빠의 궁색한 변명.
엄마는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그저 말없이 한쪽 팔에 오빠를, 그리고 다른 팔에 나를 꼭 껴안고 한참을 서 있다가 “배 고프재? 어여 가서 밥 먹자.”라며 나를 업고 집으로 향했다.
이미 다 늦은, 다른 친구들은 저녁을 먹고 쉬고 있을 그 시간에 세 가족은 단촐한 저녁상을 차리고 마주 앉아 하루를 무사히, 그리고 건강하게 보낸 감사의 기도를 했다.
엄마를 기다리며 열심히 읊었던 그 모든 소원은 다 없어지고 말았다. 사탕이 없어도 행복했고, 과자를 사지 않아도 좋았다. 낮에 친구 경희가 신었던 그 예쁜 신발도 이제는 부럽지 않았다. 나비리본이 왜 필요했는지 조차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좋은 엄마의 품이 나에게 있었다. 풍성하고 충만한 엄마의 가슴이 나의 것이었으니까. 엄마의 가슴에 손을 넣고 잠이 든 어린 나는 세상의 어떤 것 하고도 바꾸지 않을 소중한 것이 내 손 안에 있음으로 편안하고 깊은 잠이 들었다.
막내인 내가 돌이 채 되기 전에 아버지 앞서 보내고 여러 남매들 품에 안고 힘겹게 보릿고개 넘나들던 우리 엄마. 조르기만 해서 엄마 마음을 아프게 했던 아들, 딸들이 이제는 엄마에게 만난 것도 사드리고 좋은 곳도 구경시켜드릴 수 있을 만큼 어른으로 성장했지만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을 줄 알았던 엄마는 이미 우리 곁에 계시지 않는다.
어릴 때, 교회에서 미제 초콜릿을 나누어 주었을 때 받자 말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다 먹고 말았다. 그러나 오빠는 먹지 않았다. 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집에 와서 꺼내, 이미 다 녹아 흐물흐물 한 것을 내게 건네주며, “숙아, 이 초콜릿 진짜 맛있데이. 니가 묵어라.” 하던 오빠. 이번 겨울에 한국 갈 때 ‘미제 초콜릿’사가지고 가서 오빠와 함께 먹어야지. 내가 하나 덜 먹고 오빠 한개 더 드려야겠다.
섬집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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