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그 사람

2016.03.03 07:55

김길남 조회 수:10

고마운 그 사람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길남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게 이 세상이다. 나 혼자라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눈 뜨면서부터 남의 도움을 받는다.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내가 살아가는 게다. 고마운 분들이야 셀 수 없이 많지만 등산하면서 도움을 받은 두 사람이 떠오른다.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 이야기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북한지역을 거쳐 향로봉, 진부령, 설악산, 태백산, 소백산, 속리산, 덕유산,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다. 이렇게 먼 거리를 산등성이를 타고 걸으려니 보통의 힘으로는 엄두도 내기 어렵다. 그리고 가다가 그만두거나 중간에 한 구간이라도 빠트리면 종주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 세밀한 계획에 의하여 한 구간씩 나누어 종주한다. 이번에 가고 다음에는 이어가서 끝까지 걷는 긴 행로다.

현직에 있을 때라 공무로 가지 못한 구간이 있었다. 무주군 무풍면과 김천시 대덕면을 잇는 덕산재에서부터 삼도봉을 거쳐, 충북 영동군 상촌면과 김천시 구성면을 잇는 질매재까지 걸어야 했다. 호우주의보가 내려, 잇지 못하다가 친구와 둘이 강행했다. 한 시간쯤 가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좁은 길이라 양쪽의 풀과 잡목에 물이 고여 넘어지니까 길을 가로 막았다. 그 것을 헤치고 가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먼 거리를 걸으니 지치기도 하고 여름이지만 체온조절도 어려웠다. 거의 다 가니까 비는 그쳤다.

가지고 간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걸었다. 질매재에서 지례면까지 2시간은 내려가야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거리와 시간을 맞추어 보니 무주에 가는 버스를 탈 가망이 없었다. 질매재 근처에 목장이 있어 트럭이라도 있으면 대절하려 했으나 없었다. 걱정을 하며 걷는데 마침 승용차 한 대가 왔다. 온갖 아양을 떨며 손을 들었다.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하니 태워 주었다. 그 청년 내외는 연무대에 사는데 고향에 가는 길이라 했다. 어찌 고마운지 몇 번이나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이름과 전화번호라도 알아 놓았다가 사례를 해야 하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10여km를 걸어 내려와야 했다. 버스를 놓치고 자야하는데 산촌이라 여관도 없었다. 밤새 걸어서 여관을 찾아야 할 처지에서 어려움을 면해준 그 청년에게 다시 고마움을 표한다. 그 마음 씀씀이로 보아서 잘 되었으리라 믿는다.

또 한 번은 호남정맥을 종주할 때 일이다. 대설주의보가 내려 미리 겁을 먹고 따라가지 못한 곳을 혼자 갈 때였다. 전남 순천의 송치에서 달뜨기재까지 구간이다. 여기서는 혼자라 더 외로웠다. 송치는 구례에서 순천으로 넘어가는 고개이고, 딸뜨기재는 순천시 서면에서 구례군 간전면으로 이어지는 고개다. 1천m가 넘는 고개에서 토지면까지 가려면 3시간은 걸어야 했다. 그래도 별수 없이 30분을 걸어 내려왔다.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고 그 자리가 그 자리 같았다. 괜히 겁먹고 따라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내려왔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던지 차 소리가 났다. 길도 좋지 않고 포장도 되지 않은 산길에 차가 나타나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손을 드니 태워 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했다. 그 내외는 전남 광양시에 사는데 피아골로 쉬러가는 길이었다.

고마운 사람들은 곳곳에 있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면 변기를 만들어 준 사람이 고맙고, 세수하면서는 수돗물을 보내 준 사람이 가상하다. 아침밥을 먹으면서는 농사짓고 고기 잡으며 짐승을 기르는 사람이 고맙고, 밥을 해서 차려준 아내가 고맙다. 그들이 아니면 내가 살아갈 수 없다. 고마운 사람이 하나둘이 아니다.

백두대간을 종주한지가 20년이 지났다. 지금도 그들이 생각나는 것을 보면 마음속에 깊이 간직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 모습이 떠오른다. 마음에 깊이 새겨진 일은 쉬이 잊히지 않는다. 그 젊은이들도 지금은 중년이 되었을 게다. 그들의 하는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고 아들딸도 잘 가르쳐 대성하기를 빈다.

오늘도 남의 도움을 받으며 하루를 보냈다. 감사한 마음이다.

(2016. 2. 18.)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313
어제:
203
전체:
231,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