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멘타인

2010.06.12 05:30

이월란 조회 수:59

클레멘타인


이월란(10/06/11)


내 늙은 아버지는 따땃한 아랫목에 푹신하게 누워 계시다
까맣게 물들인 올백 머리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쥐색 빵모자를 붉은 신생아처럼 쓰고 계시다
나는 아버지가 밉지도, 곱지도 않다
내가 살아갈 덧없음의 시간처럼 정들지 말아야 한다
늙은 아버지의 머리맡에서 새파랗게 젊은 귤을 까서 먹는다
아버지는 오돌도돌 귤피를 벗기고도
얇디얇은 과육의 살 껍질까지 더 벗겨야만 드신다
적어도 당신이 나보다 더 먼저 죽겠군요
그 땐 조금, 아주 조금만 울겠어요
혼자 오물오물 까먹다가 넌지시 물어 본다
아버지예, 까 드리까예?
우리 새끼가 까주면 맛있게도 먹지
속살까지 홀랑홀랑 벗겨선 끈끈한 과즙을
서늘한 피처럼 두 손에 홈빡 적시며
접시에 가지런히 담아드린다
까는 시간보다 휠씬 빠른 속도로 한 접시를 비우신다
그렇게 살아 오셨겠다
[나의 사랑, 나의 사랑,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늙은 내 아버지는 장차 태어날 나의 아기처럼
가슴 속까지, 시큼시큼 철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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