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야기

2016.03.10 18:04

전용창 조회 수:154

친구 이야기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전용창

  어느 때부터인지 잠자리가 두려워졌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가 엎어져 보기도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일어나서 절 수련을 50배하고 무릎을 상하로 반동을 주고, 고개는 좌우로 도리도리하며 손목 털기도 해 보았다. 몸과 마음을 무아지경으로 만들어 보는 등 그렇게 30분을 피곤하게 하고 이제는 잠이 좀 오겠지 했는데 오히려 정신만 말똥말똥 할 뿐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친구들 생각이나 해보자! 먼저 내가 중신한 친구를 떠올렸다. GO라는 친구는 고등학교시절 술친구였는데 어느 날 직장으로 찾아 왔기에 앞좌석 여직원한테 친구가 찾아 왔는데 함께 저녁 식사나 하자고 했더니 쾌히 승낙하여 우리는 반주도 곁들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친구는 직장동료와 결혼에 골인했다. 그 여직원은 처음엔 나를 좋아했는데 내가 결혼했다고 하니 그 뒤로는 눈도장도 안 찍고 타이핑도 늦게 해주었다. 친구는 봉급을 타서 외상값을 주고 나면 겨우 쥐꼬리만큼만 마누라에게 준다고 했다. 그러던 그가 급여가 통장으로 들어가는 때부터 남들처럼 아내통장으로 입금토록하고 본인은 용돈을 타다 쓴다고 했다. 물론 용돈으로 족하지는 않고 여러 번 타다 쓰곤 했을 것이다. 술자리에서는 으레 그 친구의 노래가 빠질 수 없다.

“사랑이 좋으냐 친구가 좋으냐 막걸리가 좋으냐 색시가 좋으냐 막걸리도 좋고 색시도 좋지만 막걸리 따라주는 색시가 더 좋더라.”. (중략)

그는 제주고씨인데 술자리에서 혹간 옆 사람과 인사라도 나눌 때면 큰소리로 “마이 네임 이스 고” 라고 했다. 인정도 많고 의리도 강했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들은 친구를 뗑깡쟁이이고 술주정뱅이라고 했다. 나도 그랬다.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형님과 누나들 눈치코치를 보며 용돈을 타려면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그가 그렇게 받은 돈으로 친구를 만나서 술값을 먼저 내는 것도 사람이 그리워서 그랬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W나했다.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 줄 사람 있나요? …….”

단칸방에서 맨주먹으로 신접살림을 시작한 그가 치매로 고생하시는 노모님을 임종 때까지 모셨고, 지금도 집안 제사를 도맡아 모시니 그런 친구와 그 아내가 존경스럽다. 친구 형님과 누나 그리고 조카들은 나를 보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지만 나는 벙어리 냉가슴이다.

친구는 큰딸 은하와 그 아래 남매를 두었다. 아빠에게 불평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다닌 자녀들은 스스로 강해져서 잘 살고 있다. 한 번은 S전자에 다니는 큰딸이 그랜저 자동차를 사주었다고 자랑했다. 손자도 넷이나 두었으니 큰 축복이다. 친구의 술버릇을 고쳐주기 위하여 악기를 배우자고 했다. 색소폰은 악기가 너무 크니 클라리넷을 배우자고 했다. 나를 자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무척 즐거웠던가 보다. 이삼일 지나지 않아 집으로 초대하여 가보니 친구 것과 나한테 줄 클라리넷까지 2개를 보여주었다. 그 뒤 우리는 대형마트 문화교실에서 함께 두 달간 공부를 하고 나는 공사장일로 인해 더 이상 못나갔다. 친구는 열심히 나갔다. 처음에는 시끄럽다던 이웃주민들이 지금은 악기소리가 안 들리면 어디 출타했냐고 안부를 묻는다니 내가 중신애비로서 잘 인도한 것 같다.

이때쯤이면

“오∼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를 부르고, 기타반주로는

“사랑이 좋으냐 친구가 좋으냐 막걸리가 좋으냐 색시가 좋으냐…….”

란 노래를 부르며 조르바처럼 아니 총각시절에 주막집 추억을 생각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겠지! 어느 날 은하엄마에게 조용히 물었다.

“저 많이 원망했지요?”

“이제는 자식 손자 재미로 살지요.”

다음에는 L이라는 친구 이야기다. 서울에서 중견기업 사장으로 있는 그는 자기그룹 회장님이 회식자리에서

“L사장은 추호도 회사 그만 둘 생각 하지 말고 내가 그만 둘 때까지 같이 있는 거야, 알았지 ?”

그 친구는 어디에 그런 복이 들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는 남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경청한다. 그뿐만 아니라 맞장구를 쳐준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정치이야기도 들어주고 부부싸움이야기도……. 자기는 날마다 싸우고 산다면서 엄살로 동조한다. 자신의 자랑은 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자랑을 다 들어준다. 그러니 나이든 회장님이 얼마나 좋아할까? 겸양지덕을 실천하고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곳이 천국이라고 생각하는 L친구는 100세를 누리다가 떠날 때는 『혼불』작가처럼 “한 세상 잘 살다 갑니다.”라고 껄껄 웃지 않을까?

직장의 기관장이었던 J는 만나면 사람을 즐겁게 해준다. 그분은 평상시 중요한 회의가 있는 자리에서도 초반에 좌중을 웃음으로 장악한다. 여자간부라도 참석한 자리면 “♡♡씨는 아직도 18세 순이 같아 오늘따라 미스코리아는 저리가라 하네. 봄의 화신같이 아름답습니다. 내가 젊었다면 청혼이라도 하련만…….” 남자라면 “♥♥씨는 혹시 요즈음 복권이라도 당첨된 것 아닙니까? 얼굴빛을 보니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지 않나” 이러한 화두로 긴장된 장내를 순식간에 웃음바다로 만들고 화기애애하게 회의를 진행하니 회의안건이 중대 사안인데도 원만하게 마무리가 된다. 상대방을 기쁘게 해준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가?

어디에선가 본 글이 떠오른다. “자기 마음에 있는 악한 마음과 독한 마음을 비워야 남의 마음에 있는 악한 마음과 독한 마음을 비울 수 있다.”

법정스님은 「텅빈 충만」에서 텅 비어야 메아리가 울리고 새것이 들어 갈 수 있다고 하셨고,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게 아니고 꽃이 피어 봄이 온 다고도 하셨다.

아직도 겨울의 끝자락이 내 옷소매를 붙잡는다. 내 마음속에는 아직도 겨울의 묵은 때가 많이 남아 있다. 새봄의 향기로 가득 채울 수 있도록 비워버리자. 정녕 내 마음속까지 봄이 와야 진정한 봄이 오는 게 아닐까? 오늘 하루 즐겁고 행복했던 일 두 가지만 생각하며 텅 빈 마음으로 잠을 청해야겠다.

(2016. 3. 10.)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789
어제:
203
전체:
232,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