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겨울 요즘 겨울

2016.03.11 08:19

이미자 조회 수:85

옛날 겨울 요즘 겨울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이미자

밤새 눈이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 버렸다. 젊었을 때는 눈이 내리면 아름답고 낭만적이라며 참 좋아했는데, 언제부턴가 눈이 오면 겁이 난다.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자식들이 전화를 한다. 밖에 나가지 말고 조심하라고, 아이한테 하듯이 당부를 하는 것을 보면 나도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유년시절, 기온은 영하 몇 도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엄청 추웠다. 엄동설한에는 외풍이 무척 심했다. 어머니는 바늘구멍으로도 황소바람이 들어온다고 방문에 난 작은 구멍도 창호지를 바르셨다. 지금은 물풀, 딱풀이 있어서 얼마나 수월한지 모른다. 하지만 그 옛날 어머니는 아궁이에 불을 때거나 화롯불에 풀을 끓이시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아버지는 새벽에 어머니보다 일찍 일어나셔서 가마솥에 물을 끓이셨다. 물이 데워지면 어머니가 밥을 지으셨고 우리는 세수를 하러 부엌으로 나갔다. 아버지는 항상 뜨거운 물을 대야에 붓고 당신 손으로 온도를 맞춰가며 찬물을 섞어 주셨다. 부모님의 사랑과 정성이 나이든 지금까지도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겨울이 얼마나 추웠던지 뜨거운 물에 세수를 하고 손으로 문고리를 잡으면 손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빨래터에서는 어머니들이 얼음을 깨가며 맨손으로 빨래를 하셨다. 빨래는 빨랫줄에 널자마자 고드름이 달리고 황태덕장에서 황태를 말리듯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여 여러 날 말려야 했다. 지금은 세상이 좋아져서 빨래는 세탁기가 빨아서 건조까지 해주고, 수도꼭지를 틀기만 하면 따뜻한 물이 나오니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모든 것이 해결된다.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겨울이 시작되면서 오기 시작한 눈을 마당 가운데 모아서 산처럼 쌓아 놓았다. 눈은 올 때마다 엄청난 양이 쏟아졌다. 눈은 많이 오고 녹지 않으니 어떤 때는 뒷간 가는 길과 김칫독을 묻은 곳까지만 굴처럼 길을 뚫어놓고, 눈이 그치면 눈을 마당 한가운데 모아놓았다. 그 눈은 봄이 되어야 녹기 시작했고, 항상 마당은 질척거렸다. 동네아이들은 산처럼 쌓아놓은 눈에 구덩이를 파서 그 안에 들어가서 놀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눈이 많이 와도 폭설이란 말은 못들은 것 같은데, 요즘은 폭설이 내렸다는 말을 가끔씩 듣는다. 집집마다 처마 밑에는 고드름이 달리고, 겨우내 얼음이 녹지 않아 온 동네가 스케이트장이었다. 경사진 곳에서는 비료포대를 타고 놀았고, 논바닥이나 방죽에서는 스케이트를 탈 수 있었다. 온 동네가 스케이트장인 셈이었다. 요즘엔 인공적으로 만든 스케이트장에 가려고 돈과 시간을 들여야 하니 옛날과 지금을 비교하면 세상이 너무 많이 달라졌다.

내가 어렸을 때는 겨울김장을 반양식이라고 했었다. 김장을 할 때면 아버지는 연중행사로 김장독을 묻으시고 독 위에 짚으로 지붕을 얹고 새끼줄로 동여매 놓으면 눈과 바람을 막아줘 김치가 얼지 않고 김치를 꺼내다 먹기가 수월했다. 또 텃밭에 구덩이를 파서 무를 묻고 짚가리로 구멍을 막아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반찬을 만드셨다. 지금 이런 풍경을 보기 힘들지만 그때는 집집마다 그랬다.

어릴 적 겨울은 추웠던 기억만 있는 게 아니다. 긴긴 겨울밤 아이들은 따뜻한 사랑방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며 놀다보면 배가 출출해졌다. 어른들은 고구마를 삶아서 간식으로 내오셨고, 우리는 동치미 독으로 가서 살얼음을 깨고 바가지 가득 동치미를 꺼내다가 고구마와 함께 먹으면 추운 겨울밤을 잊고 즐거워했었다.

설이 지나 정월대보름날의 추억은 세월이 지나도 생생하다. 동네아이들은 집집마다 박으로 만든 바가지를 들고 오곡밥이며 여러 가지 보름나물을 얻으러 다녔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가져갈 밥과 나물을 미리 준비하셨다가 담아주시곤 했다. 우리는 여러 집에서 얻은 나물과 밥을 비벼서 추운 줄도 모르고 맛있게 먹었다.

요즈음 아이들은 너무 과보호하는 바람에 조금만 추워도 밖에 내보내질 않는다. 그 시절에는 추운 날씨에 의복이 나일론 내복에다 겉옷도 나일론이었던지 따뜻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들은 밖에서 하루 종일 뛰어놀았다. 요즘은 털 코트에 털 부추 차림이어서 눈 위에 나뒹굴어도 춥지 않을 정도다. 그래도 요즘세대 부모들은 춥다며 나가지 못하게 한다.

손자손녀들을 보면 감기를 안고 산다. 나는 외손자 한 명에 손녀가 둘로서 한 집에 한 명씩이다. 다들 멀리 떨어져 살기에 전화를 해보면 이 집 저 집 돌아가면서 감기 때문에 병원에 다닌다는 얘기다. 너무 과보호를 하니까 면역력이 길러지지 않아 감기 바이러스를 이기지 못하는 것 같다.

지난 100년 동안의 기온을 찾아보니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그때 느꼈던 추위는 현재와 온도차가 많아서가 아니라 건축의 단열이라든가 변변치 않은 의복에 따른 체감온도 차이였던 것 같다. 이젠 나이가 먹어서인지 겨울도 짧게 지나간다. 겨울이 시작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봄에게 밀려나는 것 같다. 세월이 참으로 빠르다.

(2016.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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