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와 락은 어디서 오는가

2016.03.22 08:15

박제철 조회 수:95

고[苦]와 락[樂]은 어디서 오는가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박제철

노세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화무십일홍(花無十一紅)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얼씨구절씨구….

이런 노래가 있다. 이는 제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열흘을 넘기기 어렵고, 보름달이 되면 어김없이 초승달로 변한다는 말이다. 음양 상승에 따라 한 번 성하면 반드시 쇠하여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며, 즐거움이 있으면 괴로움이 있고 괴로움이 있으면 즐거움이 있다는 말로 해석해도 무난할 성싶다.

나는 노래를 부르고 춤추고 노는 데는 별로 소질이 없다. 그런데 내 친구는 지금도 술 한 잔 하면 노래방을 가잔다. 그럴 땐 아주고역이다. 나는 걷기를 좋아하는데 그 친구는 몇 백 미터만 가려해도 택시를 타자고 한다. 노래방에 가지 말고 걷자는 말에 때로는 의견이 충돌하기도 한다. 그래서 친구도 끼리 까리 만나야 소통도 잘 되며 마음도 편하고 즐겁다.

나에게 노래방을 가자고 하는 것은 괴로움이요, 걷자고 하는 것은 즐거움이다. 이렇듯 괴로움은 고(苦)고 즐거움은 낙(樂)이다. 누구나 괴로움을 싫어하고 즐거움을 좋아한다. 그러나 괴로움과 즐거움이 어디서 오는지 그 근본을 알려고 하는 사람은 드물다. 지금의 고통을 슬기롭게 받아넘기면 낙(樂)이 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고(苦)를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이며,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지금의 고(苦)가 영원할 것으로 알고 짜증나는 삶을 살 것이다. 그러한 원리를 알지도 못하면서 어릴 때부터 책상머리엔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라는 표어 한 장을 붙여놓고 공부를 했었다.

올해도 봄은 어김없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봄은 생명력이 있는 모든 만물이 꿈틀대는 계절이다. 봄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갖가지다. 아름다운 꽃들의 향연을 기다리며 설렐 사람도 있고, 가을의 풍성함을 상상하며 씨앗을 심을 날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봄에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수확할 것이 없다. 이런 것을 빗대어 여치와 개미라는 동화도 있다. 여치는 여름 내내 노래 부르고 놀기만 하다가 겨울이면 부지런히 일하여 먹을 것이 풍부한 개미집으로 구걸하러 간다는 내용이다. 그 동화가 어쩌면 고(苦)와 낙(樂)을 잘 설명하고 있는 성싶다.

나는 봄이면 씨앗 뿌릴 준비를 한다. 텃밭 같은 조그마한 면적이지만 씨앗을 뿌릴 때면 역시 힘이 든다. 씨앗을 뿌리고 가꾸지 않으면 수확할 것이 없으므로 꾸준히 가꾸어야 한다. 수확하여 아들딸은 물론 이웃과 같이 나눌 때의 기쁨을 알기 때문에 힘든 고통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고가 변하여 낙이 되는 이치다. 그런가하면 즐거움이 변하여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요즈음 선거를 앞두고 공천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국회의원 시절 큰소리치며 즐겁게 지내던 사람들이 낙천의 나락으로 떨어지는가 하면, 목표를 가지고 고생하면서 때를 기다리던 사람이 공천을 받는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 공천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왜 받지 못했는지 생각해보지도 않고 괴롭다고만 아우성이다. 즐거움의 밑바탕은 괴로움이다. 아우성만 치지 말고 지금의 괴로움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해야 다시 찾을 수 있는지 냉정하게 뒤돌아보는 마음이 필요하다.

괴로움을 탈출하여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주인의식 없이 세상만을 탓하며 살아간다면 영원히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천지는 모든 사람에게 새봄이라는 약동의 기운을 똑같이 주지만, 씨 뿌릴 생각도 없이 허송세월로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아 주며 잘 가꾸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하면 씨만 뿌리고 잘 가꾸지 않는 사람도 있다. 가을걷이는 일을 한만큼 거둔다. 목표를 위한 노력 없이는 괴로움이 변하여 즐거움이 되지 못하고 영원한 괴로움만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은 한 번 찾아온 행복이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영원하기를 바란다. 어떻게 해야 한 번 찾아온 행복이 영원할까? 물질적으로 성취한 행복은 영원할 수 없다. 왜냐면 물질은 항상 변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텔레비전이 처음 나왔을 땐 흑백이었지만 그것 한 대 가져보는 것이 꿈이었던 시대도 있었다. 그러던 것이 컬러텔레비전으로 변하고 이젠 더 나아가 스마트폰 하나면 텔레비전은 물론이고 전화, 인터넷 등 우리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 예전의 흑백텔레비전을 가졌을 때의 행복이 지금 시대에서도 행복할까?

괴로움과 즐거움은 실체도 없다. 더구나 행복이란 계량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배고픈 사람은 배부른 것이 즐거움이요, 부자는 더 가지지 못하는 것이 괴로움이다. 99가마의 벼를 가진 부자가 100가마를 채우기 위해 1가마뿐인 가난한 사람에게 그 벼를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100가마를 채우면 만족할까? 그래서 부처님께서 일체유심조(一體唯心造)라는 말씀을 하셨나보다. 즉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다. 그렇듯 괴로움이나 즐거움도 마음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남쪽에서부터 꽃소식이 전해오더니 벌써 이곳 전주에도 산수유와 매화꽃이 활짝 폈고, 개나리 벚꽃도 피려고 꽃망울에 힘을 주고 있다. 며칠 뒤면 화무십일홍이라는 꽃이 만발하고 만물이 생동하는 봄의 절정이 올 것이다. 누군가 차 한 잔을 주기에 받고 보니 찾잔 속에 매화꽃 세 닢이 활짝 피어 있었다. 봄의 향기가 물씬 난다. 만물이 기지개를 켜고 약동하는 새 봄에 괴로움과 즐거움만 논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훗날의 조그마한 행복과 기쁨을 위하여 해바라기 씨 한 톨이라도 심고 가꾸어보면 좋을 성싶다.

(2016.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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