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통역기 & 문우에 대한 단상

2016.04.20 06:33

이준구 조회 수:173

동시통역기 & 문우에 대한 단상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이준구

 

 

 

  어린 시절엔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주변에 의외로 많았다. 군대 간 아들이 보내온 편지를 읽어 주던 시절도 있었다. 예전에 눈을 뜨고도 글을 모르는 사람을 당달봉사라고 했다. 6,70년대만 하더라도 군인들 사이에서는 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이 성행했다. 진짜 앞을 보지 못하던 장님을 알게 된 것은 어린 시절 심청전을 알게 되면서였다.

 실명에 대한 관심과 체험은 20147 현장 실습을 하던 요양병원에서였다. 성 요셉동산에서 요양병원으로 옮겨온 환우 한 분이 매일 한쪽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 계셨다. 단정하신 할머니가 말없이 창밖을 응시하면서 굴리는 묵주에는 얼마나 무거운 근심이 담겨있을까 호기심으로 그분을 실습보고서 작성대상자로 선정했다. 그분은 시력을 잃어가는 환자였다. 실습생의 형체가 검은 머리와 하얀 가운만 희미한 형태로 보인다고 하셨다. 시력의 상실은 10여 년 전 미국에 있던 딸을 찾아갔다가 얻은 황반변성이 원인이었다. 오랜 비행 끝에 공항에 내려 태양을 바라보다 눈에 따끔한 충격을 느낀 이후로 시력의퇴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수년에 걸쳐 시력이 약화되고, 이젠 검정색과 하얀색과 불빛만 인식된다고 하셨다. 천명이 넘는 노인병원 환자 중에서 8층 병동에서만 황반변성 환자로 남자도 한 분 계셨다. 그분도 항상 휠체어로 한 곳에만 머물었다. 병원의 환자를 대동하여 안과 진료중에 황반변성치료 여부를 전문의에게 여쭈어 보았다. 놀라운 사실은 황반변성은 완쾌가 어려운 안질환이라 했다.

 실습중 두 분 환우의 불편을 이해하려 눈을 감고 병실에서 다녀보았다. 보행 유도봉을 잡고 다녀보니 단 1분정도의 활동도 두렵고 힘 드는 일이었다. 불편함 중에서도 시력과 청력, 언어의 장애 중 시력의 상실이 가장 불편할 것 같았다. 실습이 끝나고 방문해 본 할머님은 흑백색의 구분도 안 된다 하셨다. 안타까운 사연을 소재로 말하다가 교우 중에도 황반변성 환자가 3명이나 됨을 알게 되었다. 50대 형제와 6, 70대 두 분의 자매님이었다. 지인들의 미래를 생각해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실명환자는 대부분 삶을 포기한다고 했다. 화장실은 물론 세수, 밥 먹을 때 국과 반찬 구별 등 모든 일상이 얼마나 불편하겠는가친지들의 구분도 주변의 인도자나 돌보는 이가 없으면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20여 년 전, 개의 목줄을 잡고 고속버스에 오르던 여성이 내 뒤를 따랐다. 우연히 내 옆자리에 예쁜 여인과 맹인견이 자리했다. 뒤를 따라 올라오던 승객들은 개를 피하여 대부분 비어있는 뒷좌석으로 이동했다. 창 쪽의 나는 통로 쪽에 비좁게 앉은 진돗개로 보이는 맹인견을 통로쪽에 두도록 옆자리로 이동했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예쁜 아가씨에게 눈동자가 멀쩡한데 왜 개를 데리고 다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학창시절 갑자기 시력이 약화되었다고 했다. 그녀와 함께 자리한 맹인견은 서울까지 3시간 동안 목석처럼 움직임이 없었다.  그때의 무례가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목요야간반에 실명한 김성은 씨가 등록을 했다.  버스 옆자리에 앉았던 학생을 떠올리다 보니 수업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예쁘장한 얼굴에 조용히 앉아서 동시 통역기 점자기계의 자판을 끊임없이 읽어가는 모습이 신비로웠다. 빠른 속도로 끊임 없이 오르내리는 점자를 손끝으로 인지하여 글을 읽어 가는 모습은 선녀 같았다.

 실명자 중 황반변성의 안질환은 이제 흔한 질병중의 하나란다. 야외 활동이 많은 농촌노인과 적도근방에 사는 원주민 중 안과를 찾는 70대 이상 노인들 중 15%대로 발견되는 안질환이란다. 백세시대에 실명의 질환은 삶의 질에 엄청난 장애로 다가온다.

 장애자에 대한 편견으로 대학원 시절에 고민하였던 기억이 새롭다. 사회복지학을 전공, 올해 대학원을 졸업했는데, 재학기간 동안  장애자들에 대한 거세와 사회적 비용 낭비 제거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나는 지지했었다.

 장애자의 복지는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큰 선(善)이다. 보편적 인간의 삶을 위해, 동시통역기를 개발한 과학자들의 따스한 인본정신과 자선의 마음 씀씀이에 대하여 고개가 숙여졌다. 가장 힘든 삶의 여정에서 꿈을 지닌 문우를 우리 옆으로 보낸 준 천상의 선물은 동시통역기가 아니겠는가? 보지는 못하지만 보는 사람보다도 더 깊은 시간의 성찰에서 오는 아름답고 따스한 문우 김성은 님의 글을 기다리는 마음 간절하다. 메일을 점자로 변환시켜, 섬세한 손끝으로 읽어가며 오랜 시간을 숙성시킨 참된 내면의 글이 기대된다. 가슴 깊이 숨겨두었다가 끓이고 끓인 농축의 주물이 형틀에 채워지리라 기대한다. 2016년 새봄은 김성은 문우의 따끈한 글을 읽는 재미로 맞이하고 싶다.

                                                                (2016.3.31.)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409
어제:
203
전체:
231,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