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우당 문익점 선조님을 기리며

2016.05.01 07:03

양희선 조회 수:116

삼우당 문익점 선조님을 기리며

전주안골은빛수필문학회 양희선



남편은 잠에 취한 나를 꼭두새벽부터 깨웠다. 차시간이 촉박하니 어서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가기 싫다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내게

“바람도 쐬고 꽃구경도 할 겸, 향사에 참석하면 좋지 않겠어?”

“남자들이나 시제를 모시는 것이지 여자들은 가지 않아도 되는 게 아냐?”

가지 않으려고 핑계를 댔다. 외골수인 남편은 나를 기어이 설득해서 광주행고속버스를 탔다. 광주무등경기장 앞에는 문중에서 대절한 버스가 8시에 출발할 예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광주시내에 사는 문씨종친들은 부부동반으로 많은 분이 버스에 앉아있었다. 버스에 올라서는 우리를 보고 종친들은 멀리서 일찍 오느라 고생했다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다정한 내외분들을 보니, 남편이 나를 앞세우고 가고 싶어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4월 5일 한식날, 삼우당 문익점 선조님 시제를 모시러 경남 산청으로 갔다.

화창한 봄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개나리, 진달래, 꽃잔디가 울긋불긋 꽃 천지였다. 화사한 꽃들이 내 맘을 사로잡아 가라앉은 기분이 핑크빛으로 부풀었다. 바람도 쐬고 꽃구경도 하자는 남편의 꼬임에 따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일찍 서둔 탓에 문중에서 아침식사대신 요기할 깨죽을 준비했다. 휴게소에서 간편하게 아침끼니를 때웠다. 노인들이 식사하기 편하고 고소하면서 소화도 잘되어 깨죽을 준비했다.

경남 산청군 신안면 도천서원 광장에 11시가 지나서 도착했다. 광장 잔디밭에 의자가 놓여있었다. 남평문씨충선공종회를 시작할 시간이 가까워지자 문씨일가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자리에 앉았다. 600명을 예상하고 준비했으나 400명가량이 오셨다고 한다. 개인 사업이 아닌, 종친회문중사업이기 때문에 종친들이 모여 현명한 판단과 의견일치로 유적보존사업, 제향봉사, 환경정화. 문화재와 재산관리, 장학사업, 홍보사업, 상호간의 친목 등 사회에 유익한 일을 시행하고 있다. 해마다 종회를 열면서 문중사업에 대한 결과보고와 세입세출 결산보고를 끝으로 종회를 마쳤다.

회의가 끝나고 문익점 선조님묘소로 올라갔다. 산비탈을 조금 올라가니 다리가 팍팍하고 숨이 차올랐다. 깨끗하게 정돈된 묘소 앞에 선조님의 공덕비가 우람하게 서있었다. 유택제단에 제물이 차려져 있고, 예복을 입은 제관들이 제향지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단 앞이 협소하여 많은 종친들이 소나무아래 여기저기 흩어져 제관의 지시에 따라 예를 올렸다. 무릎이 부실하여 언덕에 걸터앉은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었고, 예절이 왜 그리 길게 느껴지는지 한 시간도 더 지난 것 같았다. 알아듣기 쉬운 우리말로 간소하게 제사를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이 금이라는 요즘, 훗날 젊은이들이 제사예절을 고이 이어갈지 염려가 되었다.

삼우당 문익점 선조님은 고려 충혜왕 원년 1331년 2월 8일 단성현 배양리 지금의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서 문숙선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삼우당(三憂堂)이며, 그 의미는 항상 나라의 어려움을 걱정하고, 성리학이 보급되지 않음을 걱정하며, 자신의 도가 부족함을 걱정한다는 뜻으로 직접 지은 호이다. 23세에 목은 이색 선생과 함께 정동향시에 합격했고, 포은 정몽주 선생과 신경동당에 급제하였다. 공민왕 12년(1363년) 서정관의 자격으로 원나라에 사신의 일행으로 갔다가 돌아오면서 목화씨를 붓두껍 속에 몰래 숨겨와 장인 정천익과 함께 씨앗재배에 성공하여 전국에 전파함으로써 의류혁명과 경제발전에 큰 공을 세운 분이다. 씨앗을 밀반출했다가 발각되면 사형에 처할 만큼 엄중한 법이었다. 목숨을 걸고 헐벗은 백성을 위해 위험을 감수한 훌륭한 어른이셨다. 60세에 종2품 경영동지사에 임명되었으나 공양왕에게 운영에 필요한 [시무8조]를 올리고 영원히 관직을 떠난 청백리였다.

세종대왕 7년 (1461년)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에 유형문화재 제237호로 지정되어 도천서원으로 사액되었다. 문익점을 기리는 사당을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새로 재건하여 선조님의 신위를 모시는 도천서원이 복원되어, 향사 때 제관들의 숙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도천서원 바로 옆 산에 문익점 묘소가 있다.

제사를 지내면서 문씨 가문에 공경할 선조님이 계시다는 것이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웠다. 종친일가들이 바쁜 일손을 놓고 많은 분이 참석하여 선조님의 거룩한 업적을 기리고 있었다. 가난한 백성들이 허름한 옷을 입고 추위에 떠는 것을 불쌍히 여겨, 목숨도 두렵지 않는 기개(氣槪)와 애국심을 발휘한 문익점 선조님이 한없이 존경스러웠다. 포근한 이브자리와 따뜻한 무명옷을 입게 한 선조님이기에 후손들이 받들어 모시는 제사가 만대에 이어지기를 빌었다. 거룩하신 문익점 선조님을 본받아 문씨 가문에서 많은 인재가 이어서 나오기를 축원하였다.

(2016. 4. 16.)

*사액 : 임금이 사당, 서원, 누문 따위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리던 일

*시무8조 : 시급한 일. 그 시대에 중요하게 다루어야할 일

*청백리 :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고 올곧은 깨끗한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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