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앞에서

2016.05.02 04:59

신길우 조회 수:27

나무 앞에서

 

  申 吉 雨 (본명 신경철)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국제문학지 계간<문학의강> 발행인 겸 편집인대표

  한국영상낭송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skc663@hanmail.net

 

   

나무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나무가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생김새도 그렇고, 살아가는 모습도 그렇다.

머리인 순들은 맨 위에 있고, 몸체인 둥치와 줄기는 중간에 있으며, 발이라고 할 수 있는 뿌리는 땅에 굳게 박고 있다. 머리를 쳐든 채 몸통을 항상 바르게 펴고서 맨 위에 얼굴을 내밀고 살아간다.

점점 자라면서 몸집이 늘고 줄기와 가지가 굵어져도 그들은 한결같은 자세로 위로 자라며 꼿꼿하게 산다. 이런 모습과 자세는 어느 나무나 다 같다. 늙어서도 변하지 않는다.

그래선지, 나무들의 삶을 바라보고 있으면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고, 또 여러 가지를 깨닫게 하기도 한다.

 

나무들은 순이 맨 위에 있다. 머리가 맨 위에 있기에 언제나 세상을 널리 바라보며 산다. 동물들처럼 발등만 보며 살지를 않는다.

그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을 향하여 쭉쭉 자라며 산다. ‘청운(靑雲)의 큰 뜻을 품어라’,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고 떠들어대지도 않는다. 말없이 스스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무들은 지혜(智慧)의 삶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나무들은 곧게 자라고 꼿꼿하게 산다. ‘콩 심은 데에 콩 나고, 팥 심은 데에 팥이 나는것처럼 나무들은 나무이기에 선 자세로 자라고 살아간다.

자세가 꼿꼿한 것은 마음이 바르고 정신이 올바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굵고 큰 나무들에도 비굴하지 않으며, 수많은 꽃과 열매를 맺는 것에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남에게 아부(阿附)하거나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리려 들지도 않는다. 부정(不正)도 모르며 불의(不義)를 알지 못한다. 유혹(誘惑)이나 인연(因緣)에도 얽매이지 않고 각자 꿋꿋하게 살아갈 뿐이다. 마음이 바르고 뜻이 곧기에 그들은 어디서나 곧게 산다. 한 마디로 나무들은 절의(節義)의 삶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나무들은 머리 위에 하늘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나무들은 언제나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하늘에 가까워질까 밤낮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로 자란다. 순들은 가장 위쪽의 끝에서 나서 자라고, 가지들도 한결같이 하늘을 향해 뻗는다. 무수한 잎들도 언제나 하늘을 바라보며 산다. 그들은 위만을 바라보며 하늘을 지향하면서 산다.

나무들의 이러한 삶의 자세는 어느 것 하나 다르지가 않다. 흙으로 덮어도 돌로 눌러 놓아도 어느 새 틈을 비집고 머리를 내밀어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로 자란다. 내가 살길은 오직 이 길 하나뿐이라는 올곧은 자세를 보인다.

따라서 그들의 삶의 목표는 뚜렷하고 변함이 없다. 오직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전념한다. 목표의 수정은 물론 옆길로 가거나 해찰도 하지 않는다. 남을 엿보거나 곁눈질하지도 않고 오로지 위만을 지향하며 열심히 산다. 가지가 꺾이고 잎새가 찢겨 떨어져 나가도 좌절(挫折)이나 포기(抛棄) 같은 것은 아예 꿈도 꾸지 않는다. 오직 있는 힘을 다하여 위로 오르고 하늘을 향하는 삶을 해내는 것이다. 목표에 대한 강한 신념과 어떠한 고난도 극복해내는 적극적인 의지(意志)의 삶을 나무들은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나무들은 또한 언제나 하늘을 우러르며 산다. 하늘에서 빛과 눈비를 내려주어 살게 해줄 뿐만 아니라, 구름과 바람을 일으켜 이 세상을 조절하고, 만물이 순환되도록 계절을 바꾸어 준다는 사실도 안다. 모든 힘이 하늘로부터 나오고, 하늘이 가장 위대한 것임을 나무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하늘을 향하여 기도하고 하늘을 섬기며 자란다. 하늘이 있어 살고 하늘에 의해 살기에, 그들은 평생을 하늘을 위하며 산다. 하늘을 가장 위대한 신으로 여기는 사람들보다도 신심(信心)이 훨씬 강하다. 사람들처럼 필요할 때만 하느님을 찾고, 빌 때만 하늘을 향하는 것이 아니다. 한 번이라도 고개를 떨구어 하늘을 외면하는 경우도 없고, 하늘을 원망하거나 하늘 탓으로 돌리지도 않는다. 밤이나 낮이나 오로지 하늘을 바라보며 항상 하늘을 섬기며 사는 것이다. 그 독실한 신심(信心)의 삶에 그저 감복할 뿐이다.

그래선지, 나무들은 하늘과 같은 마음으로 산다. 설령 음지에 태어나도 불평하지 않고, 바람이 심한 언덕이나 바위 위에 나고서도 불행한 운명을 한탄하지 않는다. 사람처럼 동물처럼 마음대로 옮겨 다니며 살지 못함을 불평하거나 불만스러워 하는 기색도 나타내지 않는다.

도리어 새 잎을 피워내서는 약한 벌레들에게 내 주고, 벌과 나비들이 찾아오면 꿀과 꽃가루를 빚어내어 성찬을 베푼다. 새들에게는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고, 맛과 향이 넘치는 열매로 새와 짐승들을 기른다. 비바람과 추위가 닥치면 곤충의 알과 번데기들을 낙엽으로 덮어 주고 품속에 품어 감싼다. 그야말로 나무들은 철철이 포만(飽滿)과 평화(平和)와 안식(安息)을 모든 생물들에게 베푸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벌레들이 떼로 덮쳐 어린 잎새 모두가 다 먹히기도 한다. 멧돼지의 날카로운 이빨로 속뼈가 드러나도록 갉히기도

 

하고, 딱따구리가 쪼아대어 물줄기가 끊겨도 그들은 아무 말이 없다. 죽이거나 해치는 것은 물론 해코지 마음이나 미움마저도 아예 품지 않는다. 진을 내어 상처를 아물리고, 늦게나마 다시 싹을 틔워 새 잎을 펴낸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기쁜 것이고, 내게서 빼앗을 것이 있다면 그들보다 내가 더 복 받은 것이라는 말이 그들의 삶을 보면 실감이 난다. 하늘같은 시혜(施惠)의 삶에 고개가 숙여진다.

나무들은 또한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다. 연초록의 봄철을 보내고 짙푸른 녹음을 드리우고는 황적색의 단풍을 보인 뒤 낙엽으로 대지를 덮곤 한다. 앙상한 가지에서 잎을 틔우고 저마다 꽃을 피워 씨앗과 열매를 맺어 대지에 뿌리고는, 스스로 희생하여 먹이와 거름이 된다. 만물이 소생(蘇生)번성(繁盛)하고 조락(凋落)사멸(死滅)하는 순환(循環)의 원리를 그들은 계절에 따라 몸소 실천하여 보이는 궁행(躬行)의 삶을 하는 것이다.

 

나무들은 한낱 식물들이 아니다. 우리들에게 보다 큰 훈육(訓育)과 자성(自省)을 주는 큰 스승이다. 무엇이 바른 삶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참다운 것인가를 가르쳐 준다. 비록 동물같이 소리를 내지 못하고 인간처럼 말하지도 못하는 나무들이지만, 그들은 침묵(沈黙)의 웅변(雄辯)’으로 우리들에게 말해 주고 있다. 나무들은 사람처럼 꼿꼿이 서서 지혜롭고 의롭게 살며, 굳센 의지와 신심으로 일하고, 남에게 베푸는 삶을 하라고 스스로 행하여 본보이며 우리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나무들의 삶은 만물의 영장이라 자처하는 인간들보다 앞서 있는 것 같다. 다만, 그들은 그러한 삶을 몸소 실천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을 감지(感知)하고 자각(自覺)하는가의 여부(與否)는 오로지 인간의 능력 유무(有無)에 달려 있을 따름이다.

나무(植物)들의 삶, 그것은 우리들의 삶의 모범이다. 나무는 확실히 우리들의 삶의 큰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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