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산칠봉 품에 안겨서

2016.05.07 20:16

정정애 조회 수:169

완산칠봉 품에 안겨서

전주꽃밭정이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정애

내가 태어난 곳은 완주군 우전면 태평리 상거마라는 마을이었다. 지금은 전주시로 편입되어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이 되었다. 상거마는 완산 제1봉인 도화봉 밑자락에 웅크려 앉은 작은 동네였다. 우리 아버지께선 도화봉 북편 산자락을 개간하여 복숭아 과수원을 일구셨다. 우리 과수원의 만발한 복숭아꽃으로 인하여 도화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거의 날마다 완산칠봉에 오르는 남편을 따라 등산하기로 마음먹고 집을 나섰다. 시작 지점은 완산칠봉 서편의 도화봉과 매화봉 사이의 오르막길에서부터다. 전에는 없었던 두툼한 멍석 비슷한 카펫(?)이 깔려 있어서 어설픈 계단을 오를 때보다 푹신한 촉감에 기분도 좋고 힘이 덜 들었다. 매화봉 초입에 먼지 묻은 운동화나 옷을 털어줄 에어컴프레샤와 땀을 식혀줄 캐비닛 형의 송풍기도 신설되어 있었다. 등산객들에게 꼭 필요한 시설을 해놓은 구청의 배려가 고마웠다.

매화봉 기슭에는 매화꽃이 만발하여 매화봉이라는 명칭에 알맞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매화봉 중턱까지 오르는 등산길은 상당히 가팔라서 초입부터 숨이 차고 힘이 들었다. 남편이 건네주는 지팡이의 힘을 빌리니 훨씬 오르기가 수월하여 쉬엄쉬엄 위로 올라갔다. 바람결 따라 코끝을 스치는 솔내음이 신선했다.

매화봉 중턱에 오르니 능선을 타고 오르는 길과 남쪽 산허리를 감싸고 이어지는 평탄 길로 나뉘어 있었다. 등산에 자신이 없는 나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자연발생적인 지름길인 것 같다. 오르막길을 오를 때와는 달리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고 걷기가 편해졌다. 늘 푸른 소나무 사이로 여린 새순을 틔우고 있는 활엽수들의 새로운 연출이 온 산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 나목으로 추운 겨울을 여겨낸 마른 나뭇가지 끝에 피어나는 새순들은 노란 색으로 시작하는 것도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붉은 빛, 보랏빛, 황토색, 회백색을 띈 것들도 있어 각양각색이다. 여러 수목들이 어울린 새순들의 하모니는 어떤 화가의 그림보다 절묘했다. 땅속에 여러 가지 염료들이 간직되어 뿌리를 통해 저렇게 아름다운 색들을 뿜어내는 것이 아닐까! 나무들 사이사이로 산벚꽃들이 피어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특히 정혜사 뒤편엔 산벚꽃 나무가 더욱 많아서 봄이면 꽃 대궐을 이루곤 한다.

검무봉을 지나 제7봉인 장군봉에 이르니 잘 지어진 누각, 팔각정이 버티고 서있다. 누각 계단을 올라 정각 변두리에 설치되어 있는 의자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았다. 천년고도 전주를 지켜왔다는 명산답게 전주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남쪽으로는 서학동을 지나 구이 쪽으로 향하는 길이 길게 뻗어 차들이 분주히 오간다. 북쪽에는 전주천이 도심을 가로질러 다가동을 거쳐 덕진 쪽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다. 간간이 까치 울음소리, 장끼 울음소리, 슬픈 두견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탁 트인 정각 안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더운 땀을 식혀 준다.

산은 넉넉한 품성을 지녀 어느 누구도 거부하는 일없이 모두를 반겨 맞아준다. 신선한 공기를 만들어 일상에 찌든 인간들에게 활력소를 제공하기도 하고, 숲을 찾아든 새들의 안식처가 되어 노래하고 서로 사랑하는 쉼터를 제공하기도 한다. 산의 품에 안기면 근심걱정도 사라지고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지켜보았을 이 완산칠봉은 먼 훗날 내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이 자리에 이렇게 서서 사람들을 반길 것이다.

(2016. 5. 6.)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272
어제:
203
전체:
231,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