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2016.05.08 13:42

정장영 조회 수:18

사랑방

전주안골은빛수필문학회 정장영



사랑방신세를 면한 지 70여 년이 됐다. 내가 10대 후반이었으니 한국전쟁 전이다. 객지에서 학교를 다니다보니 1주일 아니면 2주일 만에 귀가했었다. 토요일 하룻밤 잠자리가 없어 이웃집 사랑방 신세를 졌었다.

농촌주택이 거의 초가삼간의 몸체에, 행랑 간, 두 세 칸이니 방은 대개 두 개 아니면 많아야 세 개 밖에 없다. 우리 집은 큰방은 부모님과 어린동생들이 거처하고 작은 방은 형수가 거처이니 내 방은 없는 셈이다. 그래서 귀가하면 남의 사랑방신세였다.

마을 도래친구들도 혼인 전에는 거의 전용 방이 없는 처지라 사랑방신세다. 내가 잠자는 이웃집 세 칸짜리 사랑채는 외양 칸 위아래방으로 아랫방은 집주인 노인장께서 손자들과 거처하고 윗방이 사랑방이었다.

노인께서는 한학을 하셔서 매우 유식하셨다. 자녀와 손자들을 모두 한문교육을 시켰고, 한때 나도 그들과 같이 한문을 배운 바도 있다. 귀가하면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꼭 자기 사랑채로 오라는 부탁도 있었다.

오늘은 토요일 밤, 저녁밥을 먹고 2주일 만에 찾아뵙게 되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하고 인사드리면 매우 반겨주셨다. 그리고 그간 보고 듣고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를 하라는 말씀이었다. 나는 생각나는 대로 대충대충 말씀드리면 다 들으신 다음, 다시 자세히 되묻기도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촌로이지만 세상돌아기는 시국을 알아보려는 노력이었다고나 할까?

농촌지역의 사랑방은 사랑채가 따로 있기도 하지만 거의 문간방이다. 사랑방에는 대개 머슴이 관리하는 경우가 많았고, 새경(1년 임금)을 줄 만큼 여유가 있어야 했다. 마을의 요지(要地)마다 있었으나 끼리끼리 모인다고나 할까?

노인층, 젊은층, 초동층 등으로 나뉜다. 대화와 정보교환 그리고 놀이만 하는 곳이 아니라, 간단한 일거리도 가져와 서로 도우며 처리하기도 했다. 저녁에는 놀다가 밤이 깊어 헤어지면 갈 곳 없는 분만 잠자리에 들었다.

마을 앞 모정에는 추울 때만 빼고는 사람들이 들끓었다. 마을을 지나가는 나그네도 가끔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점심때가 되거나 날이 저물 때가 있다. 비교적 여유 있는 사랑채로 모셔 점심이나 하룻밤, 마을 사람들과 정담을 나누고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가정에 손님이 오시면 집마다 여유방이 없으니 과객의 하룻밤 숙소 역할도 했다. 또 손님이 오신 기색이 보이면 자기 집으로 잠자리를 초청하기도 했다. 물론 초청했으니 아침식사까지 접대하는 것이 관례요 인심이었다.

예로부터 아낙네들의 소식통은 우물가의 아침이라고 했다. 남성들은 사랑방이고, 주객(主客)이 서로 통성명(通姓名)도 했다. 그리고 외부소식도 들고 혼담도 오갈 수 있었으니 일거양득(一擧兩得)이었다.

사랑방 손님께는 무조건 식사대접을 하기도 했다. 그러하니 사랑방에도 예의가 있었다. 가급적 끼니때가 되면 방문을 삼가야한다. 식사 대접을 받아 폐를 끼치기 때문이다.

낮에 정신없이 때가 된 줄도 모르고 놀다보면 실레를 할 경우가 가끔 생긴다. 실제로 갑자기 손님(사랑꾼)까지 대접하다보면 가족들이 결식하는 경우가 생기도하니까. 정숙은 물론 침구와 화장실 사용은 청결에 유의해야 했다.

그 때는 미성년인 총각은 전용할 방도 없었고, 집을 떠나면 거의 사랑방신세를 많이 졌다. 이곳이야말로 남성들의 개방적인 응접실이요, 작업실이며, 식당이요, 다방이며, 호텔 방 등 다용도 공간이었다.

이제 농촌의 사랑방이 사라진지 오래라지만 환경도 매우 좋아졌다. 각자의 전용할 방, 한 칸도 갖추었으니 내 어릴 때와는 또 다른 양상이다. 이를 두고 잘사는 민주적사회의 문명국가라 할까?

온 나라가 하루 생활권이 되었고, 통신과 방송망의 발달은 농촌이나 도시나 같이 뉴스가 전달되는 시대다. 참으로 금석지감(今昔之感)이 드는 좋은 세상이다. 그리고 아들 딸집을 찾아가도 잘 필요가 없다. 멀리 있어도 마음대로 통할 수 있으니 말이다.

옛날의 농촌인심은 사라지고 과객들도 숙박하려면 민박이란 이름아래 경제적 부담을 해야 하는 세상이 됐다. 그 옛날 그곳에서 듣던 이야기와 장난들이 영화처럼 생각나고 번득인다. 이제 사랑방도 눈으로 볼 수 없으니 국어사전에서나 찾아야할 세상이 아닐까?

(2016. 5 8.)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189
어제:
354
전체:
231,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