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2016.05.09 14:59

고안상 조회 수:12

아버지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고안상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도 어언 23년이 흘렀다. 여든이 넘으셨어도 항상 무엇인가 하시며 바쁘게 사시던 아버지께서는 어느 날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뒤 1주일 만에 세상을 뜨셨다. 아산병원에 입원하여 1주일도 지나지 않아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나를 포함하여 온 가족들은 너무나도 황망하고 허탈한 마음이었다.

석산어머니와 결혼하여 자식을 두지 못하시다가 마흔이 되어 처음으로 자식을 두게 된 아버지께서는 8남매를 낳아 잘 기르고 가르치기 위하여 남들이 쉬고 있는 이른 봄에도 항상 논에 나가 방죽을 파고, 산 넘어 골짜기에 밭과 논을 개간하는 등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그렇게도 많은 고생을 하셨다. 5학년 때인가 보다. 큰아들인 내가 제법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는 목수에게 오동나무로 된 책상을 맞춰주시며 아들의 장래를 기대에 찬 눈으로 다독여주시던 일이 엊그제만 같다.

아버지는 무학이셨다. 서당훈장인 할아버지는 한량이셔서 아버지께서는 어려서부터 일을 하셔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자녀들에 대하여 남다른 교육열을 가지셨던 것 같다. 열댓 마지기 가량의 논이 천수답이어서 연이어 가뭄이 들었던 고등학교 1, 2학년 무렵에는 학비와 식비를 댈 수 없어 고리채로 쌀 빚을 얻으면서도“아무 걱정하지 말고 공부에나 힘쓰라.”고 하시며 지원하시던 인자하시고 의지가 강하셨던 아버지이셨다. 그 당시 철이 든 아이였더라면 학업을 중단하고 아버지의 고생을 덜어드렸어야 했는데, 이제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래도 고생하신 보람이 있어서“큰아들 내외는 교사이고, 큰딸은 회사 과장, 막내아들과 막내딸은 대학생이니 40여 호 접지마을에서는 우리 집 만 한 집도 없다.”며 좋아하시던 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른다. 8남매 중에서 딸 하나를 잃고 7남매를 길러 아들 하나, 딸 하나 만 초등학교를 졸업시키고, 모두 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 보내 교사로, 회사원으로 생활하고 있으니 마을에서는 자랑할 만도 하셨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두 어머니와 함께 사셔야 하는 운명이어서 평생을 두 집 살림을 하시며 사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두 어머니와의 사이를 좋은 관계로 유지하며 산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으리라.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항상 가정불화가 상존했다. 석산어머니와 생모인 우리 어머니 사이가 원만한 관계였으면 아버지의 삶도 여유가 있었을 텐데 두 분 사이의 관계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아버지께서도 두 어머니에게 대화와 사랑보다는 호통과 때로는 폭력을 행사하곤 했으며 그러한 상황 속에서 자식들은 겁에 질리기도 하고 불안해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석산어머니께서는 첫째아들인 나를 예뻐하고 사랑하시어 그분과 정이 듬뿍 들었고, 동생들은 어머니께서 기르시어 석산어머니와는 정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인지 젊은 시절에는 나와 동생들 사이에도 틈이 없지 않았다. 왜냐하면 석산어머니께서는 오직 큰아들인 나만을 생각하시지 동생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으셨다. 심지어 친정조카들에게까지도 사랑을 주지 않으셔서 조카들도 서운해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한 가정환경에서 아버지께서 두 아내를 이끌고 자식들을 보살핀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버지께서는 자상함보다는 엄격함으로 가정과 자녀들을 이끄셨던 것 같다. 그렇지만 아버지께서는 두 어머니와 끝까지 함께 하신 일은 남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신 것으로 생각된다.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무학이셨지만 글도 잘 읽고 계산력도 있으셔서 마을 반장일도 하셨다. 시인이셨던 할아버지를 닮으셔서인지 재주가 있으셨던 것 같다. 우리 형제들에게는 항상 예절을 강조하셨고 부지런하게 살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그래서 우리 형제자매들은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또 잘들 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이다. 지금은 돌아가셔서 뵈올 수 없지만, 아버지께 감사드릴 뿐이다.

(2016. 05.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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