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빼로 데이/11월 11일

2016.06.26 00:05

서경 조회 수:27

     빼빼로.jpg


   오늘이 빼빼로를 선물하며 서로의 사랑을 주고받는 빼빼로 데이란다. 빼빼로 끝에 묻혀 있는 초콜렛이 달콤한 사랑의 연상 작용을 불러왔는지 모르겠다. 1995년 중학생들의 장난기 있는 작은 행동이 롯데 제과의 스토리텔링과 맞물려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왔다고 한다 1995년이면 내가 미국으로 이민 온 지도 어언 8년에 접어들었을 때다. 그러니, 나에게는 빼빼로 데이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나 감상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나에게도 빼빼로 데이가 생기기 이전부터 1111일은 특별한 날이다. 이 날은 가톨릭 주보성인인 '마르띠노'의 영명축일이다. 이 마르띠노라는 이름은 성인의 거룩함보다, 나에게 진정한 사랑을 가르쳐준 분의 이름으로 내 가슴에 더 깊이 남아 있다    

   어린 아들을 백혈병으로 잃고, 연이어 남편과도 헤어져 오로지 어린 딸과 둘만이 덩그러니 남았을 때, 그 분은 내게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주었다. 그 분의 지적인 깊이와 너그러움은 나에게 존경의 마음을 갖게 하였고, 우리 청소년 센터 아이들에 대한 따스한 사랑과 부드러움은 나에게 존경을 넘어 사랑의 마음까지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어이 하랴. 나는 청소년 센터의 교육부장이요, 그는 굴지의 병원에서 근무하는 과장에 우리 센터 인간관계 훈련 특강 강사다. 더우기 우리는 원장 신부님의 전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스캔들을 일으킨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마음은 열 두 대문 빗장 잠그듯 꽁꽁 숨겨두어야 했다.

   그러나, 운명의 날은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직원들의 회식이 있는 날, 그는 깔끔하고 유창한 언변으로 사회를 보았고 내 노래 순서가 되었다. 전형적인 A형 소심증을 가진 내가 노래를 부르다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미적거리는 나에게 갑자기 그가 물어왔다  

    " <떠나가는 배> 아세요? "  

   그 질문은 내게 거의 충격적이었다. 나는 고국을 떠나기 싫어 이민 신청 서류마저 서랍에 넣어둔 채, 밤마다 이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짜고 있을 때였다. 나는 곧 내가 <떠나가는 배>가 되어 고국을 떠날 걸 알고 있었다. 내 나이 서른. 내 처지와 더불어 한창 감상에 젖어있을 때였다.  

    "가사를 다 모르는데요?"   "제가 곁에서 도와 드리죠!"  

   그 이후, 그 노래는 우리 두 사람의 운명을 예고하는 주제곡이 되었다. 결국 그 분에 대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외로움은 더해 갔고, 이민서류 접수도 더 앞당겨졌다. 이민 오면서 그에게 준 선물은 <떠나가는 배> 시화 액자였다. 그리고 나도 똑 같은 걸 하나 만들어 왔다  

   떠나오던 날, 비로소 나는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별의 생맥주를 마신 힘이었을까. 해준 게 아무 것도 없다며, 돌계단에 앉아 울던 그 사람. 백미러로 점점 작아지는 그를 보며 내 얼굴 위로도 어떤 뜨거운 수분이 끝없이 흘러내렸다.     

   사랑은 사소한 공통점도 더 큰 의미로 두 사람을 묶어 놓는다. 우리는 생일도 같은 날로 6년 터울 진 섣달 스무 여드렛날이었다. 미국 와서 천주교 신자가 된 것도, 같은 신앙 속에서 그 분을 만나고 싶다는 나의 열망이 절반의 이유였다 

   그의 영명축일이 달과 날짜가 같은 1111일이요, 내 본명 요안나의 영명축일이 1212일인 것은 또 무슨 운명의 연결고리인지. 달과 날이 같은 날은 365일 중에도 딱 열 두 번밖에 더 있는가. 나는 이것마저 운명으로 믿고 싶다.  

   마르띠노. 그 분은 어느 하늘 아래서 무슨 생각을 하며 오늘 하루를 보내셨을까. 삼십 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마다 이 날이면 그 분을 떠올리는 내 마음을 짐작이나 할는지. 기분도, 흐린 날씨도 모두 멜랑코리하다  

   . . .......   그래, 사랑이 고픈 날이다. 내 좋아하는 라이오넬 리치의 'Hellow'를 들으며  마음을 달래야 할까 보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28 2012.12.18 (화) 부슬비 오고 흐림 지희선 2012.12.18 354
227 포토 시 - 눈 오는 산장의 밤1* file 지희선 2013.01.06 358
226 (포토 에세이) 주먹 쥔 알로카시아 잎/사진;김동원 지희선 2012.06.16 359
225 낯선 마을을 지나며(미주문학 2012년 봄호) 지희선 2012.01.16 362
224 (포토 에세이) 혼자 날아가는 새 지희선 2013.04.26 362
223 시조 - 파도* 지희선 2007.09.19 364
222 (포토 포엠) 너 먼저 떠난 길 - 사진/김동원 지희선 2012.02.09 367
221 (미발표) 콩국수 초대 지희선 2013.09.03 368
220 (포토 포엠) 균열- 사진/김동원 지희선 2012.02.09 368
219 (포토 포엠) 태종대 해변길 - 사진/김동원 지희선 2012.02.09 374
218 (포토 에세이) 돌아오지 못한 배- 사진/김동원 지희선 2012.01.05 379
217 62. 우리 글 바로 쓰기 - 작품집 또는 작품 표시 부호/이승훈 지희선 2011.11.13 381
216 연시조 - 백사장 갈매기 떼* 지희선 2007.09.19 387
215 시조가 있는 수필 - 안나를 위한 조시 지희선 2013.09.15 391
214 시조 - 기다림* 지희선 2007.09.19 394
213 (포토 에세이) 하얀 코스모스/ 사진; 김동원 지희선 2012.10.01 394
212 문장만들기 십계명 - 남상학 지희선 2011.12.25 395
211 포토 에세이 - 쌍둥이 민들레 file 서경 2020.04.28 396
210 연시조 - 연잎* 지희선 2007.09.19 398
209 연시조 - 로즈 힐로 가는 길* 지희선 2007.09.23 401

회원:
4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2
어제:
4
전체:
1,317,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