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족보(견공시리즈 34)

2009.09.29 13:49

이월란 조회 수:27




기묘한 족보 (견공시리즈 34)



이월란(09/09/27)



잘난 토비 엄마는 도그쇼의 챔피언이었단다
챔피언 라인의 족보가 무진장 자랑이란다
토비의 오만한 눈빛이 한 번씩 혈통을 과시한다
족보가 나보다 훨씬 낫다 이거냐?
웃기지 마라, 내가 어때서?

  
아담 아빠와 하와 엄마의 비행과 가출로 시작된 행려의 역사
야훼의 차별 앞에 동생을 죽여버린 가인의 잔인한 질투와
자식의 저주를 부른 노아의 벌거벗은 주정과
마누라를 누이로 속여 파라오의 후궁이 되게도 했던 아브라함의 나약함과
정욕에 눈이 어두워 푸른 요단 속의 소돔과 고모라를 택한 롯의 탐심과
장자권을 뺏기 위해 형을 교묘히 따돌린 야곱의 치사한 처세술과
친정의 수호신인 드라빔을 훔쳐 남편에게 갖다 바친 라헬의 간교함과
시아비를 꼬드겨 대를 이은 다말의 발칙함과
홧김에 므리바 반석을 독설로 쳐버린 모세의 망령된 입술과
승자에게 붙어버린 라합의 기생 기질과
나실인의 서약을 어기고 나태한 세상으로 빠져든 삼손의 우둔한 격정과
교만의 지붕 위를 거닐다 밧세바를 범한 다윗의 바람기와
아주까리보다도 못한 니느웨는 망해도 싸다 도망쳐버린 요나의 고집스런 반항과
15년의 생명을 덤으로 받고도 해이해진 히스기야의 방자함과
바알을 섬기고 힌놈 골짜기 불속으로 아들들을 지나가게 한 므낫세의 잔인함과
고통 앞에 무릎 꿇은 욥이 잠시나마 동경했던 그 덧없음과
베가를 죽이고 왕이 되었지만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 되어버린 호세아의 비운과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가다 마침내 부인해버린 베드로의 연약함과
인류를 대표하는 마지막 배신자로 이름을 빛낸 가롯유다의 암매함을
모조리 남김없이 깡그리 야무지게 이어받고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용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용서받은 핏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받은 축복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족보에 내 이름이 올랐다는 사실
챔피언 라인이 대수랴, 요 건방 떠는 토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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