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

2016.07.18 05:38

김길남 조회 수:20

승무(僧舞)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길남

단옷날 풍남제가 열린다하여 덕진공원을 찾았다. 연못에는 아직 꽃봉오리는 나오지 않았으나 커다란 연잎이 가득했다. 마침 전주 춤 페스티벌이 열려 온 나라에서 춤꾼들이 모였다.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춤이 아니었다.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한 사람 한 사람의 춤추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에게도 이런 홍복이 오는구나 싶었다.

살풀이, 북춤, 부채춤, 양반춤, 장고춤 등 여러 가지 춤을 선보였지만 승무가 가장 돋보였다. 하얀 치마저고리에 박꽃보다 더 흰 장삼을 걸쳐 입고 가사를 걸친 차림에 얇은 사(紗) 고깔을 쓴 모습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아닐까. 거기에 무상무념의 표정은 이 세상 모든 번뇌와 시름을 넘어선 선의 경지에 다다른 자태였다. 일부러 꾸며낸 아름다움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참 모습이었다. 어디에서 이런 아름다움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춤이 나오기도 전에 차림 그 자태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있다.

몸짓은 어떤가. 깊은 발 디딤과 함께 긴 한삼을 천천히 뿌려 모으며 웅크리고 다시 펼치는가 하면 일순간 모아 제치며 비상하는 모습은 하늘을 나는 학이었다. 아래에서 모은 사위를 살짝 뿌려 천천히 펼쳐 올리는 몸짓과 반대로 위로 크게 뿌려 팔을 넓게 펴 천천히 내리는 팔놀림은 너울너울 나는 새의 모습 같았다. 제자리에서 어깨춤을 추다가 어느새 꼼꼼한 발 디딤으로 나가고 그 걸음이 고조되어 날아갈 듯이 잦은 발로 풀어져 한 순간에 딱 멈추는 춤사위는 땅으로 내려앉는 학의 모습이었다.

뒷부분에서 북춤은 장삼에서 손을 빼고 양손에 쥔 북채를 서로 부딪쳐 소리를 내며 빠른 걸음으로 북 앞으로 갔다. 북에서 나갔다 들어갔다 하며 북을 어르기도 하고 치기도 하는데 이 때 장삼을 날리며 삼진삼퇴 했다. 마치 휘몰아치는 바람이 점점 거세지며 폭풍으로 발전하다가 마침내 한바탕 태풍으로 감싸버리듯 마무리했다. 마지막에 천천히 호흡을 조절하며 큰 걸음으로 제자리로 돌아가 합장으로 끝을 맺었다.

승무는 맺고 끊음의 원리와 음양의 이치를 담고 있다고 한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숨 쉬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들고 나는 순환의 반복과정을 나타낸다. 발놀림은 앞으로 가면 반드시 뒤로 돌아오는 삼진삼퇴, 전삼후삼의 이치이고, 손발놀림을 포함한 모든 몸놀림은 한 번을 크게 하면 그 다음은 작게 하고 한 번을 작게 하면 그 다음은 크게 하는 대삼소삼의 원칙으로 행해진단다.

이 춤의 유래는 세존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할 때 천사색(天四色)의 채화(綵花)를 내리니 가엽(迦葉)이 이를 본받아 차림하고 방긋 웃으며 이 광경을 모방했다는 설이 있다. 또 악신 건달파가 법화경을 설 할 때의 광경을 온갖 풍류로 아뢰었다는 설도 있다. 절에서 스님에서 스님으로 이어오다가 민간 춤으로 번지는 역사적 형성과정을 거쳤다. 조선 말기에 우리 춤으로 정립 된 춤이다. 모든 전통춤의 핵심을 아우르는 으뜸 춤이다.

조용히 춤에 빠지면 무희나 구경꾼이나 사바세계를 벗어나 극락에 이르는 느낌을 받는다. 달밤에 여승이 올리는 춤을 떠올린다. 속세를 떠나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간 여승, 그 여승의 번뇌를 떨쳐내기 위한 아름다우면서도 외로운 춤이다. 저런 속에서 인간세계에 난무하는 시기, 질투, 다툼 등 혼잡스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천사들의 너울거림만이 남는다. 갓난아기의 웃음과 같이 천진난만의 세계가 아롱거린다.

사람의 몸짓에서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이 나올까 의아하다. 고아하고 청아한 자태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신비, 경건, 경외만 떠오르는, 아름다운 춤을 이어온 조상들이 고맙다. 온갖 어려움을 이기고 승무를 이어온 춤꾼들의 끈질긴 노고에 감사한다.

춤의 경지에 빠져서 정신없이 보다 보니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가끔 시끄러운 세파를 잊고 아름다운 춤을 감상하는 것은 삶을 아름답게 하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 돌아오는 발길이 승무 바람에 저절로 가벼웠다.

(2016.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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