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다

2010.01.02 09:21

이영숙 조회 수:40

  연말 세일이 한창이다.  곳곳에서 세일한다는 광고를 대문짝만하게 내고들 있다.  아무리 세일을 해도 나와 관계가 없는 것도 많다.  천 달러하는 고급 외투를 오백 달러에 세일한들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이천 달러하던 가죽 핸드백을 칠백 달러에 내놓았다고 그들이 아무리 목청껏 외쳐도 나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한다.

  한 마켓의 세일광고가 내 눈에 들어왔다.  한 봉지에 오 달러하는 찹쌀을 일주일동안 삼 달러로 판단다.  놓치지 않고 꼭 사야지.  허겁지겁 달려갔다.  두세 봉지 사오리라 마음먹었다.  판매대에 있는 사람의 말이 ‘한 가족 당 한 봉지’란다.  쌀 때 두세 봉지 사놓으려고 했던 마음을 아쉽게 접어야 했다.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려다말고 그 곁에 있는 빨래 통을 보았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십 년 전 미국에 와서 99센트 가게에서 산 것인데 여태 쓰고 있다.  오래된 것이 무슨 문제일까 마는 그도 나이를 먹으니 태두리가 깨져 두 손으로 조심해서 들지 않으면 자꾸만 더 깨질 것 같아 빨래를 담아 들고 다닐 때마다 조심스럽다.  마침 눈에 뜨이기에 얼마인가 물어보았다.  구 달러가 넘는다는 케쉬어가 말했다.  내심 깜짝 놀랐지만 겉으로 태연히 “생각보다 비싸군요.”하고는 손에 잡았던 것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일 달러짜리를 쓰는 나에게는 엄청나게 비쌌기 때문이었다.  
  계산을 하다 혼잣말로 “찹쌀을 두어 개 사려 했는데 하나밖에 안 된다니 할 수 없지.”라며 중얼거렸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케쉬어는 “빨라 가서 하나 더 가지고 오세요.  다른 사람에게 아무 말하지 말구요.”했다.  한 사람이 두 개를 살수가 없으니 전표를 따로 찍어야 한다는 말까지 덧붙이며.  활짝 웃어주며 고맙다고 했다.  “좋은 하루되세요.”라며 인사까지 깍듯이 챙긴 케쉬어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로 응수했다.

  십 달로도 채 안 되는 빨래 통을 사지 않고 내려놓는 내가 케쉬어 눈에 어떻게 보였을까?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불쌍한 실직자의 아내?  파산한 가엾은 가정주부?  어쨌든 그녀의 작은 배려가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여유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 세일하는 물건을 두 개 사기 원하는데 하나밖에 살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헤아려 자기의 도울 수 있는 상황만큼 도와주는 고운 마음.  그 마음에 나도 한껏 밝아져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켓 문을 나설 수 있었다.  마켓 앞에서 딸랑거리며 종을 치고 있는 사람 곁에 빨간 구세군 자선냄비가 참 예쁘게 느껴졌다.  착한 케시어로인해 절약하게 된 이 달러를 고이 접어 넣었다.  

  세밑, 한겨울답지 않은 따뜻한 햇살이 여기가 캘리포니아임을 확연히 느끼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