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야시장
나는 한국에 오면 꼭 만나는 친구가 있다. 많은 친구가 있어도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을수 있는 친구는 많지가 않다. 그녀는 한국에 살고 나는 미국에 살고 있지만 우리 둘 사이는 거리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친구는 마음씨가 너무 착하고 곱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 같이 변함 없이 희생적으로 나를 대하는 그녀는 정말 비단결 같은 마음씨를 가진 어진 친구다. 침이 마르도록 그녀를 칭찬해도 필설로는 부족하다. 그렇게도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그녀는 정말 천사 같다. 옆에서 지켜 본 오빠들도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오늘은 그 친구와 아우팅을 하기로 약속하고 만나서 신나게 점심에 초밥과 대구 매운탕을 먹고 동대문 건어물 시장에 건어물을 살까하고 돌아 다녔다. 저녁때가 되어 저녁식사를 대접할려고 식당을 가자고 했더니 친구는 좋은 곳이 있다며 나를 끌고 동대문 야시장으로 갔다. 시장 한 복판에 좌판대를 갖어다 놓고 즉석에서 녹두를 멧돌에다 갈아 숙주나물과 김치를 넣고 빈대떡을 구워 파는데 손님들로 북적 거렸다. 빈대떡을 시식을 해 보니 어찌나 맛이 좋은지 한참을 기다렸다가 자리가 비어서야 앉아서 친구와 둘이서 맛있게 먹을수가 있었다. 한개가 얼나나 큰지 둘이 먹고도 남았다. 오빠 드릴려고 하나 더 주문했다.
친구가 아니였으면 이런 야시장이 어디 있는줄도 몰랐을 텐데 친구 덕택에 서민들이 즐겨 찾는 이 야시장을 다 와 보고 멧돌 가는것도 구경하고 정말 즐겁고 기뻤다. 옛날 반세기전 시골에서나 볼수 있던 멧돌가는 여인네들을 보니 그 옛날 어머님이 잔칫날 멧돌 가시던 정겨운 모습이 생각나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뭉클 솟아 올랐다. 그리고 육촌 오빠가 육이오 전쟁이 발발하자 군대에 입대한후 전사했다는 통지를 받고도 육촌 올케언니가 명절때 마다 시골에 가면 빈대떡을 구워서 쟁반에 담아 상을 차려 따로 두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평상시 육촌오빠가 빈대떡을 무척이나 좋아 했기 때문이다.
부부 금슬이 너무 좋아 혼자 평생을 수절하고 농사 지으며 오빠 생각만 하고 살아가는 그 육촌 올케 언니가 매우 장하다는 생각을 늘 했는데 멧돌질하는 여인을 보니 그 올케언니가 생각나 한참을 넋을 잃고 멧돌가는 여인만 쳐다 보았다.
옆에 앉아 친구와 둘이서 빈대떡을 안주로 하고 술을 마시고 있던 손님에게 무슨 술이냐고 물으니 막걸리라고 했다. 막걸리가 시판되고 있음에 놀라니 옆에 앉아 있던 내 친구가 술 맛 좀 보겠냐며 그 손님에게 한잔을 받아와서 나를 마셔보라고 컵에 조금 따라 주었다. 술을 안마신다고 하니 막걸리는 술이 아니니 맛이나 보라고 자꾸 권해서 옛날 술처럼 취하지 않겠지 하고 친구와 건배를 나누고 싶었다.
비록 내가 산 술은 아니였지만 "변사또" 하고 술잔을 치켜들고 건배를 나누었다. 친구는 어리둥절해서 변사또가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변은 변치말고 사는 사랑하며 또는 또 만납시다." 란 뜻이라고 했더니 한바탕 웃었다. 조금 들이켰는데 옛날 시골 집에서 만든 껄쭉한 막걸리와는 맛이 전혀 달랐다.
어린시절 잔칫날 어머님께서 막걸리를 만들어 큰 독에다 담아 두었을때 나는 어머님 몰래 한사발 떠 가지고 와서 설탕을 타서 감주인양 훌훌 마신 추억이 되살아 났다. 몰래 마신 술기운 때문에 가슴이 얼마나 뛰는지 죽는줄 알았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 오르면서 누가 보면 영락없이 술취한 사람으로 볼까봐 겁이 덜컹 나 내 방으로 들어갔다. 술이 깰때까지 아무도 안 만나기로 작정하고 방문을 잠그고 심장이 터질것만 같은 고통에 안절부절 하며 맹물을 계속 들이킨 추억이 생생하게 떠 올랐다.
몇시간 고통 끝에 심장 박동이 정상으로 돌아 오면서 안정을 되 찾을수가 있었지만 그후 부터 막걸리가 맛이 좋아 마시고 싶은 충동이 와도 결코 마시지 않았다.
지금 시판되고 있는 막걸리는 진짜 막걸리 흉내만 내는 것이지 막걸리라 할수가 없다. 술맛만 조금 나고 옛 막걸리 맛은 전혀 아니었다. 그 옛날 그 맛있던 막걸리는 요즈음도 시골에서 먹을수 있는지 궁굼하다.
술을 입에도 대지않던 내가 친한 친구의 권유로 몇십년만에 술 맛을 다 보고 정말 흥겹고 즐거운 시간 이었다. 친구는 지금부터 동대문에서 종로 일가 까지 걸어 갈테니 단단히 결심하고 자기와 같이 걷자며 내 손을 꽉 붙잡고 서울 시내를 활보하며 열심히 걸었다. 삼 사십년전 걷던 서울거리와는 격세지감이 있었다. 호화 찬란한 네온싸인이 명멸하는 거리에는 사람들로 물결치고 있었고 남녀 쌍쌍이 팔짱끼고 활보하는 모습들도
눈에 띠었다.
친구는 무거운 짐 보따리를 혼자 들고 어깨에 메고 나는 손가방만 들고 가볍게 걸었는데 친구는 무거운 짐 보따리에도 불구하고 나 보다 더 빨리 걸었다. 전철을 갈아타고 오빠집에 까지 짐 보따리를 들고와서 건네주며 자기는 3번이나 전철을 갈아 타야 한다며 총총 걸음으로 사라졌다.
친구덕에 전철타는 방법도 배우고 많이 걷게 되어서 매우 기분이 좋았다. 나는 이 친구를 볼때마다 희생적으로 나를 대하는 마음씨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고개가 숙여진다.
헤어지면서 내손에 꼭 쥐어 준 은행알을 아직도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고있다. 은행알로 차를 끓여 먹을때 마다 그 차 속에 친구의 우정이 베어들여 한결 맛이좋으면서 은행알을 아작 아작 씹어 먹는 맛이 별미라 고마움으로 목이 메이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