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손길

                                                       조옥동 /시인
병실 문에 기대서서 초조함과 부끄러움에 여러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치 어린 아기를 다루 듯 간호원들의 달래는 말소리에 섞여 환자의 고통스런 부르짖음이 날카롭게 내 등에 박히는 듯 했다. 수년 전 사고로 나도 골반을 수술했다. 그 때의 고통을 꼭 그대로 떠 올리고 싶은데 깊은 항아리 밑에 가라앉은 모래알처럼 잡히지 않는다. 망각이란 정신적 작용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가 때론 원망스럽다. 모르핀주사를 맞고도 수술한 부위에 닿기만 하면 신음소릴 내는 어머니의 아픔을 함께 나눌 방법이 없다.

93세의 어머니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늘 조심 하시는데 며칠 전 넘어지셨다. 응급실에 실려와 골절봉합 수술을 받고 입원중이라 하루에도 몇 번씩 달려온다. 한국어를 하는 분이 없는 병원 측이 수시로 호출하여 나는 어머니의 통역자겸 보호자가 돼야 했다.
평소 깔끔하시고 정신력이 강한 분이다. 아직도 머리염색을 손수하시고 목욕하는 모습을 딸에게조차 보이지 않는 어머니가 병상에 누워 자신의 배설물을 남의 손에 처리하게 되었다. 하나뿐인 딸자식은 그 일을 간호원들에게 맡기고 피하듯 병실밖에 서 있다. 딸보다 오히려 맑으셨던 머리가 수술 후 혼미해지셔 며칠이 지나도 무서운 꿈속의 현상을 현실로 착각하시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일이 안타깝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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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이 가까운 나이에도 100세를 바라보는 어머니 앞에는 항상 젊은 딸 이었고, 그 할머니를 사랑하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젊은 엄마였다. 그런데 이번 예기치 못한 위급상황 앞에 무엇인가 다음을 위해 더 구체적 계획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부모와 나, 남편과 자식들을 연관시켜 가족이란 인간관계를 새삼 생각해 보았다.
만일의 경우 사랑하는 사람들과 최후를 어떻게 맞을 것인가? 평상시에 필요 사항을 기록해서 미리 예비해야겠다고, 그럼 마음의 슬픔까지 꾹꾹 눌러 간직해 두면 참을 수 있을까? 먼 후일 자책하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는가? 더 어렵고 고통스런 환난을 당한 사람들이 대처하는 지혜는 무엇인가? 만일 내가 더 노쇠하여 사고가 생기면 내 옆엔 누가 있어 줄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돌아보니 모든 생각의 중심에는 내가 있고, 자신에 대한 염려가 앞서고, 일이 발생하는 경우 자신을 먼저 보호할 궁리를 찾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마음 밑바닥 속에 에고를 품고 사는 자신을 발견하고 가증스러움에 또 한 번 슬펐다. 나는 언제나 미완성의 집이다.
건강보험제도나 병원시설이 확립되기 전엔 지체장애자나 중환자를 가족들이 장기간 돌 봐야 했다. 중병에 효자 없고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는 말이 있으나 주위에는 효부, 효자 또는 효녀로 칭송받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현대는 의료기관과 복지시설이 많고 중환자를 위한 재활원과 양노병원이 이 일을 대행하고 있다. 고마운 손길들이 아픈 곳을 치료하고 역겨운 냄새나 오물을 치우고 씻어주며 생명을 지키고 있어 우린 편히 쉬고 잠 잘 수 있다.
이 밖에도 일반인이 싫어하는 더럽고, 매우 어렵고 때론 위험한 일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메달도 없이 알아주는 영광도 없이 행하는 보통이 아닌 보통사람들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3-4-2010 미주중앙일보'이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