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의 유서
2010.03.22 17:34
호스피스의 유서
이월란(10/03/18)
어제 막 입원수속을 마친, 환자 같은 꽃들이
나무병원 가지마다 고개 내미는 봄입니다
임종의 가을은 수시로 계절과 계절 사이로 찾아옵니다
내가 나누어 준 안락한 눈빛들은 내게 걸어두는 주문이었습니다
마지막이란 말의 의미를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아는 것과 닥친 것의 차이를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내게도 언젠가 찾아올 그 불치의 병을 한 때, 그리워했습니다
불모의 땅에서도 무성한, 암종 같은 그리움
페나인 알프스에 사는 성 베르나르의 수녀처럼
두 손 모아 마음의 성지를 다독여 왔습니다
여행자들의 마지막 안식처가 되기 위해 나는 문지기처럼
늘 다정하게 웃고 있었지요
단정히 씌워진 머릿수건처럼 내게 드리우던 병상의 시트들은
산천의 머리를 하얗게 덮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었지요
온 생의 병상 위에서 끙끙 앓던 잔병치레
완쾌의 그 날을 기다립니다
나의 고단한 허리 아래 누워있던 말기의 환자들처럼
나도 당신의 가슴 아래 누워 봅니다
산다는 건, 묻지 않아도 대답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습니다
진료실 같은 우주 속, 창 밖의 봄꽃들은
마취에서 깨어난 듯, 저리 막 날아다니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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