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호의 창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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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시(軟枾)
2005.09.03 13:38
연시(軟枾)
하늘 향한 높은 가지 끝에
연시 몇 점이
푸른 하들에 박힌 듯 곱다.
고국 북한산 산정에서
맷새 피빛 발에 묻어온 흰서리가
멀리 태평양을 건너와서
북미(北美) 햇살에 물든 것인가
이 땅에 힘겨운 영혼들아
무엇이 그리도 서러워서
가지 틈새에 걸려 울고 있느냐
맥없는 가을 바람에도
우수수 떨어질 열매들 같지만
그래도 끝까지 동녘 가지 붙들고
지는 해 노을까지 받아서
붉게 붉게 익어라
그리하여
가을이 떠나갈 어느 달밤에
그리움이 붉게 차오르는
뭉청거리는 여인의 젖가슴같은 무게로
땅 위에 툭 떨어져내려
새빨갛고 질펀하게 터뜨러지거라
동방의 붉은 빛깔이 이 땅에도 번져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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