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영상
| 박영호의 창작실 | 목로주점 | 갤러리 | 공지사항 | 문화영상 | 일반영상 | 영상시 | 그림감상실 | 독자마당 | 음악감상실 |
추억의 사진첩(흘러간 옛 세월 2)
2007.03.30 19:07
"#FF0099" size="4">추억의 사진첩
전차는
"2">한동안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았다.
"2">전차의 정상 운행 재개는 1910년 후..
1919년 5월
하루 이용객수가 32,000명이었는데,
"#0099FF">1921년 5월에는 하루 90,000명으로
급증..
과언
노선은 모두 4개로 요금은 한 구간에
5전(1930년대).
당시 전차는 저속이어서 뛰면 잡아 탈 수
있었다.
벌어졌다..운전사들이
"2">손님을 우습게 여겨서 걸핏하면 뺨을 때리기도 했고,
승객은
size="2">승객대로 운전사가 건방지다며 핏대를 올려 전차
안에서 활극
"2">이 자주 벌어졌다.
교외전차라는 것도 있었다.
size="2">동대문 車庫 건너편에서 출발해 안암천·용두교를 건너
뚝섬
"2">까지 운행 안암천 건널 때는 나무 철로의 다리가
흔들거려
"2">가슴이 조마조마..이 고비를 넘기면 용두교 지나면서
인분
"2">냄새가 아주 고약했다...왕십리와 뚝섬 일대의 채소밭에
뿌린
"2">자연산(?) 비료..이 냄새와 함께 전차 안으로 파리떼가
몰려
size="2">왔다 이런 고생을 치른 후면 뚝섬의 한강 바람이
시원했다.
사건이었다.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말보다
빠르다고
size="2">한다’..‘기차보다 빠르단다’ 라는 논의가 벌어질 정도였다...1930년대 경성
시내의 전차와 버스 요금이 5전이었
"2">는데, 경성역 구내 전화 이용에도 5전이
들었다.
교통비가 비싼
편이어서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녔다.
"http://www.visitseoul.net/korean_new/history/img_pic/1910_0702-10.jpg"
width="550">
버스
"http://www.visitseoul.net/korean_new/history/img_pic/1910_0702-11.jpg"
width="550">
경성부영 승합자동차
"http://www.visitseoul.net/korean_new/history/img_pic/1910_0702-12.jpg"
width="550">
서대문 우편국 앞 승합자동차
"http://www.visitseoul.net/korean_new/history/img_pic/1910_0702-13.jpg"
width="550">
수학여행길의 버스(이화여전, 1930년대 후반)
자동차가 우리 나라에 들어온 것은 1911년으로서 그해
"2">관용 리무진 승용차가 왕실과 총독용으로 각 1대씩
들어
"2">왔다. 1914년경부터 총독부의 고관과 주한외교관,
구왕
size="2">실, 친일 귀족들을 중심으로 승용차를 타기
시작했다.
당시 승용차는 매우
귀해서 1932년 관용 승용차는
608
"2">대,
"#0099FF">자가용 승용차는 984대에 불과했다.
자동차가 전차보다 늦게 들어온 것은 도로 사정 탓도
"2">있었다. 당시 서울의 길은 비좁았고, 한강에
인도교도
size="2">없어 자동차 다니기가
불편했다.
1917년 일본인들이 도로를
포장하고, 한강에 인도교가
"2">준공되자 자동차가 늘었고 자동차는 대개 美國産.
"http://www.visitseoul.net/korean_new/history/img_pic/1910_0702-15.jpg"
width="550">
나룻배 위의 승용차
"http://www.visitseoul.net/korean_new/history/img_pic/1910_0702-16.jpg"
width="550">
진흙길에 빠진 자동차
"http://www.visitseoul.net/korean_new/history/img_pic/1910_0702-17.jpg"
width="550">
손병희의 승용차
최초의 택시영업은 1912년으로, 일본인과 조선인이
"2">합자하여 포드 T형 자동차 2대를 들여와서 시간당
5원씩
"2">받고 임대했다.
1930년대 택시요금은
80전 - 전차·버스가
5전이었던
size="2">것을 감안하면 택시는 서민이 좀처럼 이용하기
어려웠
size="2">음을 알 수 있다.
택시는 주차장에 있다가 손님이 부르면 갔다. 1930년대
size="2">종로3가 큰길 가에 주차장이 하나 있었는데, 10대
정도
"2">부리고 있었다. 여기를 ‘차부’ 라 불렀다.
size="2">이곳에 전화를 두고 손님을 기다렸으니 일종의
‘콜택시’
"2">- 장난꾸러기 아이들은 곧잘 ‘어디 어디로 차를 보내
주
"2">세요’ 라고
size="2">거짓전화를 해 골탕을 먹였다.
"http://www.visitseoul.net/korean_new/history/img_pic/1910_0702-18.jpg"
width="550">
승합택시(1920년대 말)
"http://www.visitseoul.net/korean_new/history/img_pic/1910_0702-19.jpg"
width="550">
1930년대의 택시
인력거는 자가용과 영업용 두 가지가 있었다.
1인승으로 인력거의 가장 큰 손님은 기생..집에서 대기
size="2">하다가 요릿집에서 부르면 인력거 타고
갔다.
돈 많은 기생은 ‘기마에(돈 잘
쓰는 것)’ 도 좋았으며,
size="2">단골 인력거를 이용했다. 인력거는
인력거병문(인력거
"#0099FF">방)이란 곳에 모여 있었다 요샛말로
택시터미널..
윗도리에
"2">반바지 - 신발은 검정이나 흰 헝겊으로 울(신발의
가를
"2">두른 부분)을 하고, 바닥은 검정고무 댄 농구화
비슷..
size="2">끈이 없고 엄지발가락이 따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일본인 노동자가 신는 ‘지카다비’ 였다 머리에는
흰
"2">수건을 동여 맸고 겨울에는 방한모를 썼다.
경성역(서울역) 뒤에는 화물정류장이 있어 기차 화물을
size="2">하역 - 운수회사·운반업자와 계약을 맺은
마부·트럭기
"2">사
size="2">·지게꾼·리어카꾼으로 붐볐다.
남대문 앞은 전차,우마차·리어카가
"#0099FF">함께 도로를 다녔다.
"http://www.visitseoul.net/korean_new/history/img_pic/1910_0702-20.jpg"
width="550">
인력거 대기소
"http://www.visitseoul.net/korean_new/history/img_pic/1910_0702-21.jpg"
width="550">
우마차와 인력거가 늘어선 거리(한강로)
"http://www.visitseoul.net/korean_new/history/img_pic/1910_0702-22.jpg"
width="550">
전차와 우마차·수레가 함께 다니는 남대문 앞 거리
"http://www.visitseoul.net/korean_new/history/img_pic/1910_0702-23.jpg"
width="550">
"#0099FF">
"2"> 자전거와
가마가 있는
집
valign="top">
alt="" src=
"http://www.visitseoul.net/korean_new/history/img_pic/1910_0702-02.jpg"
width="550">
"2">보신각 앞의 전차 갈림길(1935)
"http://www.visitseoul.net/korean_new/history/img_pic/1910_0702-03.jpg"
width="550">
남대문로(남대문시장 앞)의 전차와 우마차
"http://www.visitseoul.net/korean_new/history/img_pic/1910_0702-04.jpg"
width="550">
전차 정류장
"http://www.visitseoul.net/korean_new/history/img_pic/1910_0702-05.jpg"
width="550">
종로선
"http://www.visitseoul.net/korean_new/history/img_pic/1910_0702-06.jpg"
width="550">
전차와 서대문(1914)
"http://www.visitseoul.net/korean_new/history/img_pic/1910_0702-07.jpg"
width="550">
전차 정기승차권(左: 앞면, 右: 뒷면)
"http://www.visitseoul.net/korean_new/history/img_pic/1910_0702-08.jpg"
width="550">
다리 위를 지나는 전차
"http://www.visitseoul.net/korean_new/history/img_pic/1910_0702-09.jpg"
width="550">
통학길의 전차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22 | Kamille Corry | 박영호 | 2007.08.08 | 100 |
121 | For Love One Can Die/Ennio Morricone.wma | 박영호 | 2007.07.21 | 61 |
120 | 예이츠 / 그대 늙어 | 박영호 | 2007.07.11 | 59 |
119 | Winslow Homer | 박영호 | 2007.07.04 | 59 |
118 | 우리들의 어린시절(5) | 박영호 | 2007.06.17 | 95 |
117 | 모란이 피기 까지는 | 신균준 | 2007.06.10 | 58 |
116 | 비목 | 신균준 | 2007.06.08 | 52 |
115 | 1800년대 후반 조선의 풍물(4) | 박영호 | 2007.05.19 | 52 |
114 | 5월의 아름다운 여인들 | 박영호 | 2007.05.12 | 55 |
113 | 길에 대한 단상 | 박영호 | 2007.04.05 | 61 |
112 | Love You Because | 신균준 | 2007.04.02 | 59 |
» | 추억의 사진첩(흘러간 옛 세월 2) | 박영호 | 2007.03.30 | 93 |
110 | 흘어간 옛 세월 | 박영호 | 2007.03.30 | 70 |
109 | 콜로세움은 ‘영원한 도시’ 로마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 박영호 | 2007.03.26 | 53 |
108 | 공포와 절망과 죽음을 그린 화가, [ 에드바르드 뭉크 ]의 작품세계 | 박영호 | 2007.03.25 | 64 |
107 | 도심의 봄소식 | 신 균 준 | 2007.03.22 | 54 |
106 | 고국의 봄소식 1탄 - 산수유 | 신 균 준 | 2007.03.22 | 60 |
105 | 농촌 풍경 | 신균준 | 2007.03.09 | 67 |
104 | 귀천(歸天)시인/ 천상병의 일기·편지 발견 | 박영호 | 2007.03.08 | 60 |
103 | 고향/잊혀져가는 것들 /* Ss숙 | 박영호 | 2007.02.18 | 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