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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사진첩(흘러간 옛 세월 2)

2007.03.30 19:07

박영호 조회 수:93 추천:4



"#FF0099" size="4">추억의 사진첩




"#0099FF" size="2">1899년 저 유명한 ‘전차폭동사건’ 이 일어난 후
전차는

"2">한동안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았다.


"2">전차의 정상 운행 재개는 1910년 후..




1919년 5월
하루 이용객수가 32,000명이었는데,


"#0099FF">1921년 5월에는 하루 90,000명으로
급증..


"#0099FF" size="2">당시 서울의 대중교통수단은 전차가 전부였다해도
과언

"바탕" color="#0099FF">이 아니었다.. 전차 車庫는 지금의 동대문종합상가 위치.

노선은 모두 4개로 요금은 한 구간에
5전(1930년대).



당시 전차는 저속이어서
뛰면 잡아 탈 수
있었다.

"#0099FF" size="2">손님과 전차운전사 사이에 싸움이 곧잘
벌어졌다..운전사들이

"2">손님을 우습게 여겨서 걸핏하면 뺨을 때리기도 했고,
승객은


size="2">승객대로 운전사가 건방지다며 핏대를 올려 전차
안에서 활극


"2">이 자주 벌어졌다.



교외전차라는 것도 있었다.


size="2">동대문 車庫 건너편에서 출발해 안암천·용두교를 건너
뚝섬


"2">까지 운행  안암천 건널 때는 나무 철로의 다리가
흔들거려


"2">가슴이 조마조마..이 고비를 넘기면 용두교 지나면서
인분


"2">냄새가 아주 고약했다...왕십리와 뚝섬 일대의 채소밭에
뿌린


"2">자연산(?) 비료..이 냄새와 함께 전차 안으로 파리떼가
몰려


size="2">왔다  이런 고생을 치른 후면 뚝섬의 한강 바람이
시원했다.







"#0099FF">는데 이들 자동차 등장은 하나의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말보다
빠르다고


size="2">한다’..‘기차보다 빠르단다’ 라는 논의가 벌어질 정도였다...1930년대 경성
시내의 전차와 버스 요금이 5전이었


"2">는데, 경성역 구내 전화 이용에도 5전이
들었다.




교통비가 비싼
편이어서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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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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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부영 승합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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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우편국 앞 승합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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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길의 버스(이화여전, 1930년대 후반)





자동차가 우리 나라에 들어온 것은 1911년으로서 그해


"2">관용 리무진 승용차가 왕실과 총독용으로 각 1대씩
들어


"2">왔다. 1914년경부터 총독부의 고관과 주한외교관,
구왕


size="2">실, 친일 귀족들을 중심으로 승용차를 타기
시작했다.




당시 승용차는 매우
귀해서
1932년 관용 승용차는
608


"2">대,  "#0099FF">자가용 승용차는 984대에 불과했다.



자동차가 전차보다 늦게 들어온 것은 도로 사정 탓도


"2">있었다. 당시 서울의 길은 비좁았고, 한강에
인도교도


size="2">없어 자동차 다니기가
불편했다.




1917년 일본인들이 도로를
포장하고, 한강에 인도교가


"2">준공되자 자동차가 늘었고 자동차는 대개 美國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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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룻배 위의 승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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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길에 빠진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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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희의 승용차







최초의 택시영업은 1912년으로, 일본인과 조선인이


"2">합자하여 포드 T형 자동차 2대를 들여와서 시간당
5원씩


"2">받고 임대했다.




1930년대 택시요금은
80전 - 
전차·버스가
5전이었던


size="2">것을 감안하면 택시는 서민이 좀처럼 이용하기
어려웠


size="2">음을 알 수 있다. 



택시는 주차장에 있다가 손님이 부르면 갔다. 1930년대


size="2">종로3가 큰길 가에 주차장이 하나 있었는데, 10대
정도


"2">부리고 있었다. 여기를 ‘차부’ 라 불렀다.


size="2">이곳에 전화를 두고 손님을 기다렸으니 일종의
‘콜택시’


"2">- 장난꾸러기 아이들은 곧잘 ‘어디 어디로 차를 보내


"2">세요’ 라고 size="2">거짓전화를 해 골탕을 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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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합택시(1920년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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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의 택시





인력거는 자가용과 영업용 두 가지가 있었다.

1인승으로 인력거의 가장 큰 손님은 기생..집에서 대기


size="2">하다가 요릿집에서 부르면 인력거 타고
갔다.




돈 많은 기생은 ‘기마에(돈 잘
쓰는 것)’ 도 좋았으며,


size="2">단골 인력거를 이용했다. 인력거는
인력거병문(인력거


"#0099FF">방)이란 곳에 모여 있었다  요샛말로
택시터미널..


"#0099FF">인력거꾼은 ‘합피’ 라는 짧은 두루마기 같은
윗도리에

"2">반바지 - 신발은 검정이나 흰 헝겊으로 울(신발의
가를


"2">두른 부분)을 하고, 바닥은 검정고무 댄 농구화
비슷..


size="2">끈이 없고 엄지발가락이 따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일본인 노동자가 신는 ‘지카다비’ 였다  머리에는


"2">수건을 동여 맸고 겨울에는 방한모를 썼다.



경성역(서울역) 뒤에는 화물정류장이 있어 기차 화물을


size="2">하역 - 운수회사·운반업자와 계약을 맺은
마부·트럭기


"2"> size="2">·지게꾼·리어카꾼으로 붐볐다. 

남대문 앞은 전차,우마차·리어카가
"#0099FF">함께 도로를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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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거 대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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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차와 인력거가 늘어선 거리(한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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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와 우마차·수레가 함께 다니는 남대문 앞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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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9FF"> "2">              자전거와
가마가 있는
집                                    
 


"바탕" color="#0099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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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보신각 앞의 전차 갈림길(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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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로(남대문시장 앞)의 전차와 우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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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정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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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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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와 서대문(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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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정기승차권(左: 앞면, 右: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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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를 지나는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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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학길의 전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