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잔치
2010.05.07 12:51
십오 년 전 쯤, 한국에서 방송인이며 여류 수필가이셨던 임 선생님의 수필 교실에 나가고 있을 때였다.
선생님의 회갑이 다가왔다는 소식이 우리 교실에 전해졌다. 그동안 키워 내신 선생님의 제자들이 함께 모여서 축하를 해드리고 싶다는 의사가 받아들여져서, 오십여 명 정도의 글 제자들이 한 곳에 모이기로 했다. 선생님 편에서 압구정동에 정해놓은 연회장소를 알려왔고, 우리들은 그날, 모두 한복을 입고 가기로 했다.
회갑연을 한 주 앞에 두고 있던 날이었다. 강의 시간 말미에,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정중하게 부탁을 했다. 요지인즉, 그 날, 당신은 품위 있게 멋진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말씀이었다.
“무엇보다도 수필을 쓰는 사람들인 만큼 격조 높게 해 줄 거라고 믿어요. 난, 빨간 윗옷에 까만 바지를 입는 여자도 싫어하지만, 한복 입고 디스코인지 고고 춤인지, 그런 춤추는 사람들은 더 질색이에요!”
선생님은 꼭꼭 힘주어 말하셨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러보니 사실 그럴만한 사람도 없었다. 우리 교실에서는 국립 극장에도 섰던 문우가 살풀이춤을 추기로 했고, 반장이 사은시를 써서 낭독하기로 했다. 우리 교실에 있는 십여 명의 아줌마 학생들은 선생님의 막내 제자들이었으므로, 우리는 외부의 다른 선배들 앞에서 선생님의 명예와 우리들의 자존심을 걸고 한판 승부에 들어갈 것을 다짐했다.
회갑연 장소에 가보니, 백장미를 메인 콘셉트로 한 데커레이션도 역시 선생님의 성품대로 깔끔하고 세련돼 보였다.
가족은 물론 외부에서 오신 손님들도 여러 분 있었고, 안쪽에는 실내악 사중주단까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먼저 선생님의 인사 말씀이 있었고, 다른 분들의 간단한 축사가 있은 다음에, 사은시가 낭독되었다. 반장은 목이 메어 시를 낭독하였다. 감동적이었다. 앞 순서가 지나가고 나서 실내악이 조용히 연주 되는 가운데, 우리는 모두 우아하게 식사를 했다. 어머, 저 분, 누구 아니야? 평소 같았으면 호들갑을 떨어야 할 판임에도 우리들은 소곤소곤 말했다.
식사 후에 있던 살풀이춤은 좌중을 압도했다. 선생님의 흐뭇한 표정에 우리들도 기뻤다.
선생님, 기분 좋으신가봐, 선배, 수고했어요.
우리는 모두 살풀이 선배에게 박수를 치면서 의기양양해 했다.
이제 마지막 순서로 선생님께 선물을 전달하는 시간이었다.
선물 꾸러미가 전달되고 있는 중이었다.
한복을 개성 있게 차려 입은 제자들이 여기저기에서 선물을 들고 선생님이 앉아 계신 메인테이블로 나가고 있었다.
발걸음도 조신하게 태를 내며 걸어 나가는 그녀들의 한복에서도 저절로 격조가 흘러 나왔다.
그 때였다. 갑자기 쿵짜라락, 하면서 밴드 음악이 들려왔다.
어느새, 실내악단이 떠난 자리에 밴드팀이 들어와 있었다.
모두들 화다닥, 동작을 멈추고 눈들이 호동그래졌다.
어머! 어머! 이게 뭐야?
우리들도 당황해서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음악은 쿵짜, 쿵짜, 계속되었다. 장미꽃으로 장식한 연회장에서 그림자처럼 움직이던 사람들은 무색한 얼굴로 서있었다.
뭐, 이렇게 수준 떨어지는 음악이 있담, 하는 떫은 표정들이었다.
음악은 여전히 크게 울리고 웅성거리는 분위기도 가라앉지 않고 있는데, 갑자기 우리 테이블에서 향이 선배가 벌떡 일어섰다.
하얀 얼굴이 발그레해져서 우리들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뭐해? 안 나가고?”
“아니, 이 무, 무슨...선생님이 절대 그러지 말라고 그랬잖아!”
“무슨 소릴? 이런 날 막판에는 의례 이렇게 끝내 주는 거야! 봐, 음악 나오잖아, 빨리들 나와!”
그것이 그런가하고 주춤거리던 희 선배가 일어나고, 나도 그 판에 떠밀려 가운데로 끌려 나갔다. 몸을 뒤틀어 가며 앞으로 뒤로 움직일 때마다 치맛자락이 밟혔지만, 기왕 나간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신나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나오고, 상황은 급물살을 타고 막춤 판이 되어버렸다.
홀의 중앙은 신명난 한복 춤꾼들로 야단법석이었다.
한참 신이 나서, 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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