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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강정 간다

2005.08.25 00:29

윤석훈 조회 수:105 추천:7

알고 보면 사람들은 모두 강정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같이 환한 얼굴 빛내며 꼭 내가 물어보면
금방 대답이라도 해줄 듯 자신 있는 표정으로
토요일 저녁과 일요일 아침, 내가 아는 사람들은
총총히 떠나간다. 울적한 직할시 변두리와 숨막힌
슬레이트 지붕 아래 찌그러진 생활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제비처럼 잘 우는 어린 딸 손 잡고 늙은 가장은 3번 버스를 탄다
무얼 하는 곳일까? 세상의 숱한 유원지라는 곳은
행여 그런 땅에 우리가 찾는 희망의 새가 찔끔찔끔 파란
페인트를 마시며 홀로 비틀거리고 있는지. 아니면
순은의 뱀 무리로 모여 지난 겨울에 잃었던 사랑이
잔뜩 고개 쳐들고 있을까?
나는 기다린다. 짜증이 곰팡이 피는 오후 한때를
그리하여 잉어 비늘 같은 노을로 가득 처진 어깨를 지고
장석 덜그럭거리는 대문 앞에 돌아와 주름진 바짓단에 묻은
몇 점 모래 털어놓으며, 그저 그런 곳이더군 강정이란데는
그렇게 가봤자 별 수 없었다는 실망의 말을 나는 듣고 싶었고
경박한 입술들이 나의 선견지명 칭찬해 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강정 깊은 물에 돌팔매 하자고 떠났거나
여름날 그곳 모래치마에 누워 하루를 즐기고 오겠다던 사람들은
안 오는 걸까, 안오는 걸까, 기다림으로 녹슬며 내가 불안한 커튼
젖힐 때, 창가의 은행이 날마다 더 큰 가을 우산을 만들어 쓰고
너무 행복하여 출발점을 잊어버린 게 아닐까
강정 떠난 사람처럼 편지 한 장 없다는 말이
새롭게 지구 한 모퉁이를 풍미하기 시작하고
한솥밥을 지으신 채 오늘은 어머니가,얘야 우리도
강정 가자꾸나.그래도 나의 고집은 심드렁히,
좀더 기다렸다 외삼촌이 돌아오는 걸 보고서. 라고 우렸지만
속으로는 강정 가고 싶어 안달이 난 지경.
형과 함께 우리 세 식구 제각기 생각으로 김밥의 속을 싸고
골목 나설 때, 집사람 먼저 보내고 자신은 가게
정리나 하고 천천히 따라가겠다는 구멍가게 김씨가
짐작이나 한다는 듯이 푸근한 목소리로
오늘 강정 가시나 보지요. 그래서 나는 즐겁게 대답하지만
방문을고 대문 나설 때부터 따라온 조그만 의혹이
아무래도 버스 정류소까지 따라올 것 같아 두렵다.
분명 언제부터인가 나도 강정 가는 길을 익히고 있었던 것 같은데
한밤에도 두 눈 뜨고 찾아가는 그 땅에 가면 뭘 하나
고산족이 태양게게 경배를 바치듯 강 둔덕 따라 늘어선
미루나무 높은 까치집이나 쳐다보며 하품 하듯 내가
수천 번 경탄 허락하고 나서 이제 돌아나 갈까 또 어쩔까
서성이면, 어느새 세월의 두터운 금침 내려와
세상 사람들이 나의 이름을 망각 속에 가두어놓고
그제서야 메마른 모래를 양식으로 힘을 기르며
다시 강정의 문 열고 그리운 지구로 돌아오기 위해
우리는 이렇게 끈끈한 강바람으로 소리쳐 울어야 하겠지
어쨌거나 지금은 행복한 얼굴로 사람들이 모두 강정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