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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영---공존

2005.12.10 11:04

윤석훈 조회 수:132 추천:16



몇 달 전 서울 갔을 때의 일이다
붉은 그림자가 불면으로 뒤척이는 방안을
기웃거렸다 어차피 쉽게 올 잠도 아니어서
창가로 갔던 나는 십자가 모양의 외뿔을
단단하게 세운 무리들과 마주치곤 놀라웠다
대도시 안에 저렇듯이 많은 뿔들이 살고 있다니,
생각에 기댄 채 꼼짝없이 아래를 굽어보는데
좀 전에 방안을 기웃거렸던 뿔이
주춤했던 식사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움직임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지만 진작에
어깨 한쪽을 먹혀버린 러브호텔이
그런 와중에도 호객행위를 하였는지
늙은 연인이 굳게 다문 호텔 입술을
팽하고 열더니 감쪽같이 사라졌다 러브호텔
옆에 있다가 덩달아 애꾸가 되어버린 '늑대와 여우'
간판글씨 하나가 빠져 달아난 줄도 모르던
호프집의 여우들은 밤늦게까지 깔깔거리고
바깥으로 나오는 늑대는 한 마리도 뵈지 않았다
밤새 포식을 한 커다란 몸뚱이가
불꺼진 뿔을 끄덕거리며
졸고 있는 것을 본 것은 어수선한 꿈에
쫓겨 목욕탕으로 가던 이른 아침이다
그사이 다 먹혀버렸을 거라고 생각했던
러브호텔과 사우나, 여우와 늑대들
끄덕거리며 조는 뿔 아래 철없는 강아지들처럼
곤하게 자고 있었다 고것들도 조것들도
왠지 안쓰럽고 깨워서는 안될 잠만 같아
조심조심 슬리퍼를 끌었던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