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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낮은 곳이 그리운 욕망

2006.09.17 05:45

윤석훈 조회 수:183 추천:18

돌아보면 지나온 풍경에 나는 없다.
지나온 길에도 나는 없고
이렇게 없는 나를 거듭 말하지만
사방 풍경을 거느린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저물 무렵이다.
뜨지 않는 달을 기다리는 물가의 나무들이 숙연하다.
바람은 자고 있다.
버드나무는 묵상중이다.
나는 스스로 넉넉한 적이 없었다. 뿌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저녁 어스름이 짙어진다. 여울물 소리가 크다.
이 징검돌들을 누가 놓고 지나갔을까.
그는 아마 발이 젖으면서 이 징검돌들을 놓았으리라.
징검다리를 건너간다. 헛디디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잃은 것이 무엇이었을까.
웅크린 채 굳어버린 돌들,
욕망의 화산재 냄새,
허공이 어둡다.
흘러가는 여울물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낮게 낮게 여울물을 따라 날아가는 물여우나비들,
어디선가 물총새가 짧게 운다.
초저녁 별이 몇 개
여린 빛을 드러내며 떤다.

낮은 곳이 그립다.
그동안 나는 바닥 없는 바닥을 향해 걸어왔다.
비록 내가 가장 낮은 바닥과
한몸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다리를 건너도
갈 곳 없는 사람처럼.



최승호 시집 <회저의 밤>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