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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봄나들이
2007.03.23 02:19
지긋지긋한 이 아파트 말고
어느 산기슭 어느 시냇가에
집 하나 이쁘게 짓고 사는 것이
아내는 소원이라 한다
말 못하는 짐승들도 기르고
오가는 새들 모이도 뿌려주면서
채소랑 곡식이랑 감 대추들 다 가꾸어
고맙고 다정하고 아까운 이들과
골고루 나누고 싶다고 한다
그런 소원쯤 언젠가 못 들어주랴 싶고
사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
그런 산기슭 그런 시냇가를 틈날 때마다
눈여기며 나는 늙는다
먼 길 나다니는 차창마다 그런 산천을
먼발치로 탐내는 것이, 부끄럽지만
어느새 버릇이 되어 있다
천해지는 건지 철이 드는 건지
부끄럽기는 마찬가지다
햇빛 바르고 물길도 곱고 바람 맑은 곳
혼자서 점찍어보는 그런 그리운 데가
나다니다 보면 참 많기도 하다
점찍어보는 데가 너무 많은가
간이라도 빼주고 싶은 아내에게
간 빼낼 재주가 나에게는 영 없는가
간도 쓸개도 뱃속에 있기나 한가
모처럼 아내와 나선 봄나들이
나이 들수록 속절없이 산천은 곱다
꽃범벅으로 점찍어보는 그리움들이
먼발치로 자꾸만 외면하면서 지나간다
정양 시집 < 살아있는 것들의 무게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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