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이야기

2010.05.14 02:10

구자애 조회 수:54

부채이야기


                                       구 자 애


태어날 때부터 비워내는 습관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옹이가 생기도록 마디를 키워낸 것은
넋 놓고 있는 것
마구 흔들어대는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인고할 줄 알아야 꼿꼿한 대궁
밀어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바람 무시로 드나들고
단단한 결, 테 두르고 나서야
억센 흔적 슬며시 걷어내는데
아뿔사, 일생을 비워낸 보시 한 분을 보고 말았습니다
대나무 숲을 떠나기로
맘 먹은 것은 그때였습니다
바람은 어설픈 것을 좋아했던 것입니다
견뎌온 시간들 쪼개어 다듬고
바짝 엎드린 마음과 마음
마디마디에 펴 바르니 천의무봉이었습니다
스스로 만들어 낸
고분고분하고 상큼한 미풍을 당신에게
고스란히 안겨주고 싶은 건 그때부터였습니다
누군가의 살이 되어
꽉 잡힌 채 흔들리며 살고 싶은 것도 그때부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