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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2008.03.22 13:04

윤석훈 조회 수:218 추천:21

                      
                       1
  
  아침 일고여덟시경
  나는 생각한다
  서울에서 지금
  일천이백만 개의 숟가락이 밥을 푸고 있겠구나

  동그랗구나
  숟가락들엔 모두 손잡이가 달렸다
  시끄러운 아스팔트 옆
  저 늙은 나무엔 일천이백만 개의 손잡이가 달린 이파
리들이 달렸다

                      2

  하늘이 빛의 발을 서울의 동서남북
  환하게 내다 걸면 태양이 일천이백만 쌍
  우리들 눈 속으로 떠오른다 그러면

  서울 사람들, 두 귀를
  가죽배의 방향타처럼 쫑긋거리며
  이불을 털고 일어난다

  바람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그대 안으로
  들어가고, 다시 그대 숨이 내 숨으로
  들어오면 머리 위에서 신나는 풀들이
  파랗게 또는 새카맣게 일어선다 오오

  그러다 밤이 오면 죽음이 오백 년 육백 년 전 할아버
지의
  배꼽을 지나 내 배꼽으로
  들어오고 일천이백만 개의 달이
  우리의 가슴속을 넘나들며 마음 갈피갈피
  두루두루 적셔준다

  한밤중 서울의 일천이백만 개의 무덤은 인중 아래
  모두 봉긋하고 오오오
  또 한강은 일천이백만의 썩은 무덤 속을 헤엄쳐나온
  일천이백만 드럼의 정액을 싣고 조용히 내일로 떠난다

  다시 하늘이 빛의 발을 서울의 동서남북 내다 걸면
  일천이백만 쌍의 태양이 눈을 번쩍 뜨고
  저 내장들의 땅속 지하 삼천 미터 속까지
  빛살 무늬 거룩하게 새겨진다







  김혜순의 시집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