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

2010.05.21 02:00

구자애 조회 수:70

배롱나무처럼 매초롬한 자리였다면 기생할 생각이 없었을 것인데
오동나무처럼 텅텅 소리를 내며 쑥쑥 자란 결 고운 자리였다면 아예
관심조차 갖지도 않았을 것인데 아무도 넘볼 것 같지 않은 따대기가
잔뜩 앉은 이 자리에 안온히 살아볼 생각이었던 것인데 진부한 평화
에 그냥 길들여지고 싶었던 것인데 실은 젊음의 치기였던 것인데.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곳에 하루치의 욕망이라도 피워볼 생각
이었던 것인데 그래서 문득 오기가 난 것인데 나이테가 문대질 때까
지 내 생을 닦아본  것인데 살갗이 툭툭 터지도록 발광을 해본 것인데
언제부턴가 제멋대로 생긴 한 시절이 새록새록 영글기 시작한 것인데
토실토실한 향기가 씀벅씀한 가슴을 쓸어 내리기 시작한 것인데
사람들이 슬슬 나의 향기에  매료되기 시작한 것인데 유용하다는 것은
가치가 있다는 것인데.
  그럼, 나는 寄生이 아니고 自生이었던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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