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할 수 없는 '감사'의 무게 /[이 아침에] [LA중앙일보]
2010.11.27 13:41
기사입력: 11.25.10 00:07
측정할 수 없는 '감사'의 무게
조옥동 / 시인
올해 지금 근무하고 있는 실험실에서 일한 지 30번째 추수감사절을 맞았다.
그동안 계속 사용해 온 메틀러 화학분석용 저울 앞에 앉아 본다. 스위스의 메틀러가 처음 상품화한 역학 저울로 1/100mg까지 화학약품이나 재료의 질량을 달 수 있다. 처음 사용할 적엔 미세한 질량에도 민감해 정량을 다는데 애를 먹었다.
분주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갈 시간이다. 갑자기 온 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30년을 만지고 열고 닫고 사용한 기기들이 내 몸의 일부같이 느껴질 정도로 연구 서가와 실험 기기로 빼곡한 실험실에서 이룬 일들로 받은 감사를 조용히 측량하고 싶다.
실험실 연구팀이 지난 3년간 일한 연구논문이 원했던 과학저널에 실리게 되었다. 때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사고도 전혀 없었다. 한 가족 같은 연구실의 다섯 가정이 모두 화평하게 지낸 한 해였다.
새로 제출한 두 프로젝트의 연구진행 허가서를 며칠 전 심사위원회로부터 통보 받았다. 아직 연구비를 걱정하지 않고 계속 일 할 수 있게 되었다. 부족한 실험실 공간이 해결되어 또 하나의 방을 새로 사용하게 됐다.
일일이 머리 속에 정리하다보니 한결같은 마음으로 일한 동료들 모두가 개인으로나 공동으로 거둔 수확이요 연구를 통한 추수인 것이다. 그동안 같은 연구 지도교수와 한 연구실에서 일하면서 발표한 연구논문 만도 수십 편이다. 이들 추수의 감사를 하나씩 저울에 조심스럽게 올려놓는다.
숫자가 변하지 않는다. 옆에 있는 전자현미경을 사용해본다. 역시 무반응이다. 생각나는 대로 감사를 모두 올려놓아도 반응이 없다. 이 귀한 추수를 하게 된 감사의 마음을 측정하고 싶어 저울 앞에 앉아 있다. 현대는 행복지수라든지 평화의 가치 등 모든 무형의 정신적 자산을 보이는 수치로 계산하려하지 않는가.
실험결과가 예측을 빗나갈 때마다 수없이 참고문헌을 찾아 읽고 연구를 반복하면서 실망과 좌절을 뛰어넘었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면 전화위복으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매력이 연구에 집착케 만든다. 무능하게 느껴지면 지난날의 성공을 생각하며 감사한다.
연구실의 퇴근시간은 정해진 것이 아니고 연구실 문을 닫고 나가는 시간이 퇴근이다. 누가 이들을 움직이는가 하면 책임지도교수가 아니다. 연구라는 매력에 이끌리면 자신이 설정한 가설이 확증을 얻을 때까지 끈질기게 달려 갈 뿐이다.
우리 연구실의 목표는 환자의 체세포배양을 이용한 콩팥을 만들어 본인에게 이식시킴으로써 그 기능을 재생하는 일이다. 요원하고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나 현재 진행 중인 생명공학 기술의 발달로 언젠가는 누군가 꼭 이룰 것이다.
그 때쯤이면 우리의 감사하는 마음도 측정할 저울이 만들어 질 것 같다.
나는 간혹 화학약품을 용해시켜 시약을 만들 때 떠올린 내 시상을 함께 녹이고 싶다. 몸속에서 화학작용이나 생리작용을 하는 시를 쓰고 싶다. 시인은 영혼의 화학자라는 생각을 해본다.
2010년11월26일/[이 아침에] [LA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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