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한이 서린 단어[아이고]
2011.01.13 05:32
오래전 학교 다닐 때 한 교수로부터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나라를 보통 '한 많은 민족', 또는 '한의 민족'이라 부른다. 그것은 우리 조상들이 오랫동안 격어 온 서러움과 '한'이 섞여 있기 때문이란다.
약한 나라로 남의 침략을 받으며, 동서 사방에서 오는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여 어려움을 당하고 억눌려 살아가야 하는 아픔이 있었다.
‘한’이란 단어가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조상들이 겪었을 그 힘들고 어려웠을 시간들이 느껴지는 듯하여 가슴이 아려 왔다.
우리의 '한'어린 여러 단어들 중 하나가 '아이고'이다.
보통 '아이고'는 옛날에 상을 당한 집에서 상주들이 하는 곡소리이다.
우리 아버지는 친가에서 유일하게 예수를 믿으셨다. 우리는 기독교 집안인 관계로 그런 소리를 잘 들을 기회가 없었다. 큰아버지 집이나 사촌들 집에 가면 상을 당했을 때나 제사 때마다 듣는 소리가 있다. ‘아이고’라는 슬픔의 표현.
처음 들을 때는 어린 나에게 참신기한 소리로 들렸다. 귀를 기우려 사촌 오빠들의 그 '아이고'소리 내는 모습을 넋 놓고 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막내아들인데 내가 또 막내다 보니 큰아버지는 나에게 할아버지와 같았다. 사촌 오빠들은 우리 어머니와 겨우 4살 아래이니 나에게는 부모나 다름없는 분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조카들이 큰오빠들과 나이들이 비슷했다. 사촌오빠의 막내딸이 나보다 한살 위였다.
초등학교 1학년쯤이나 되었을까?
큰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가족들이 함께 큰집엘 갔다.
사촌 큰오빠를 비롯하여 사촌오빠들과 언니들이 연신'아이고'를 외치며 울고 있었다.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눈물 한 방울 없이 뽀송뽀송했다.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면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무표정했다. 입에서는 쉬지 않고 그'아이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참을 울던 사촌오빠들이 나를 보시고 일어나서는"영숙이 왔구나. 그 동안 공부 열심히 잘 하고 있었냐?"라고 물었다. 대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여졌다. 일찍 저 쪽으로 가 있을 것을 내가 왜 여기에 서 있었지? 당황해지는 상황이었다.
어린 나의 생각으로는 분명히 큰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이고'하고 슬퍼 우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인사를 웃으며“네”라고 대답하기도 뭔지 모르게 어색했다. 그렇다고 아무런 말도 없이 나 혼자 슬픈 표정을 지을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 후 제사 때도 가보면 오빠들은 언제나 눈물 기 없이 바싹 마른 눈으로 아이고를 외웠다. 여기 저기 살피며 부엌일까지 참견하는 표정으로 여전히 입에서는 그 '아이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입에서 나오는 그 말과 표정이 맞지 않음을 이해하기에 나에게는 참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한이 서린 우리민족의 '아이고'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언제나 '아이고'는 우리 민족의 친근한 단어이다.
노인들이 앉을 때나 일어날 때도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아이고~’를 꺼내서 읊는다.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다리야”...... 필요에 따라 수시로 꺼내 쓰는 자연스러운 말이다.
더하여, 너무 어이없는 일을 당하여도 언제나 따라오는 '아이고'다.
반가움과 기쁨도 우리조상들은 ‘아이고’로 표현하였다.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다 방학을 맞아 고향엘 내려가면 친지들과 교회 어른들은 반가움의 표현으로 그'아이고'를 잊지 않는다.
"아이고, 영숙이 왔네, 잘 지냈지?"
행여 장학금이라도 받았다는 말을 전하면 또 한번 외쳐지는 말이다. "아이고, 장하다 참 잘했구나."
이렇듯 '아이고'는 슬픔에서 시작된 언어이지만 우리 조상들과 가까이에 늘 있다 보니 나중에는 친근하여졌다. 기쁠 때나 아플 때나 어디에 붙여도 어색하지 않은 단어가 되었다. 편안하게 아무 곳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우리의 일상용어가 된 것이다.
우리민족과 함께 지내온 그 많은 세월들 속에서 자리해온 우리의 고유 언어'아이고'.
우리조상들의 아픔과 한을 함께 지녀 가슴에 품고 있는 그 단어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세월이 흘러가면 잊혀 질까?
우리의 자손과 그 후손을 지나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나면 '고어'라는 글과 함께 사전에서나 겨우 찾을 수 있는 단어가 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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