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숙의 문학서재




오늘:
129
어제:
312
전체:
487,586


수필
2016.11.07 13:13

나눔의 미학

조회 수 10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나눔의 미학 /   홍인숙(Grace)





밤새 내린 비가 그치지 않았다.
겨우내 스산했던 수영장 표면으로 수많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빗방울들은 내려왔다.
담장도 젖고, 꽃봉오리도 젖고, 마음도 흠뻑 젖었다.
  
혼자 있으면 한없이 기분이 가라앉을 것 같은 두려움에 B 엄마에게 전화를 하였다.
마침, 그녀도 홀로 앉아 창밖에 빗줄기를 보고 있노라 하여 두 중년의 여인은 금세 의기투합하
여 만났다. 그리고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오랫동안 가슴 깊숙이 응어리졌던 이야기들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먼저 맺히는 지난날의 아픔들을...

이제 와서, 꼭 누구를 원망하거나 헐뜯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오면서 나도 모르게 한
겹 두겹 쌓인 상처들을 부끄러움 없이 나누고, 미쳐 몰랐던 자신의 부족함도 뉘우쳐 보고, 서로
조언도 해 주다보니 문득 이것이 바로 연륜이고 우정이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가만히 놔두어도 혼자 서글프고, 다 가진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몽땅 도적 맞은 것 같이 허무
한, 사춘기 때보다도 더 감정의 헐떡임이 많은 중년의 길목에 서 보니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필
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밤중, 갑자기 밀어닥친 외로움에 당황할 때 거리낌없이 전화 한 통 나눌 수 있는 속이 깊고
따뜻한 친구가.

살아갈수록 무덤덤한 남편에게서 받는 소외감, 혼신을 다해 키운 자식들이 어느새 자라 무례하
게 뱉어 내는 말투와 행동에서 받는 불쾌감, 써도 써도 쓸곳만 생기는 생활비, 나이가 들수록 여
기 저기서 불거져 나오는 잔병, 눈앞에 닥쳐오는 노년의 불안감.
이 모든 스트레스를 몽땅 짊어진 중년의 여인들이여 지금이라도 주위를 돌아보고 귀한 나눔의 동
지를 만들자.
남편에게도, 형제에게도,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가슴속 이야기들을 후련히 나누고,
상처에 새살이 돋을 때까지 감싸주고 기다려 줄 포근한 마음의 동지를.

B 엄마와 헤어져 돌아오는 차 속에서, 내 곁에 그녀가 있음을 감사하며 나 또한 다른 사람의 귀
한 나눔의 동지가 되리라 다짐해 본다.


< 1995년 한국일보 / 여성의 창>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홍인숙(Grace)의 인사 ★ 1 그레이스 2004.08.20 1815
» 수필 나눔의 미학 홍인숙(Grace) 2016.11.07 109
67 수필 또 다시 창 앞에서 홍인숙(Grace) 2016.11.07 92
66 수필 사월이면 그리워지는 친구 홍인숙(Grace) 2016.11.07 105
65 수필 박 목월 시인님 홍인숙(Grace) 2016.11.07 139
64 수필 아침이 오는 소리 홍인숙(Grace) 2016.11.07 165
63 수필 자유로움을 위하여 홍인숙(Grace) 2016.11.07 92
62 수필 사랑의 열매 홍인숙(Grace) 2016.11.07 112
61 수필 창을 열며 홍인숙(Grace) 2016.11.07 91
60 수필 아이들을 위한 기도 홍인숙(Grace) 2016.11.07 272
59 수필 두 시인의 모습 홍인숙(Grace) 2016.11.07 124
58 수필 사랑의 편지 홍인숙(Grace) 2016.11.07 123
57 수필 감사 일기 홍인숙(Grace) 2016.11.07 101
56 수필 쟈스민 홍인숙(Grace) 2016.11.07 108
55 수필 감사와 기쁨 홍인숙(Grace) 2016.11.07 109
54 수필 목사님의 빈자리 홍인숙(Grace) 2016.11.10 123
53 수필 첫사랑 홍인숙(Grace) 2016.11.10 123
52 수필 후회 없는 삶 홍인숙(Grace) 2016.11.10 144
51 수필 I LOVE JESUS                            1 홍인숙(Grace) 2016.11.10 140
50 수필 In Loving Memory of John Ildo Righetti 홍인숙(Grace) 2016.11.10 68
49 수필 이별 연습 2 홍인숙(Grace) 2016.11.10 159
Board Pagination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Next
/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