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멍 쉬멍 숨고르멍 기찻길 따라
2011.04.13 04:43
놀멍 쉬멍 숨고르멍 기찻길 따라 / 김영교
넓은 유리창은
바깥세상을 에누리 없이 펼쳐준다
헐렁한 시간에 기댄다. 어느 틈에
활자에 머물던 시선은 풍경에 업힌다
산을 뚫고 강을 건너 철로연변 풀꽃들
바람은 눕히고 일으켜
잇몸까지 내놓고 후하게 웃는 침목들 딛고
가느다란 연기 한 조각도 놓치지 않고 품는
쉴 때 쉬고 멎을 때 멎는 완행의 맛
많은 물새들이 서식하는 후진 항구마을
느림이 쏘아 올린 활기찬 눈부심
저토록 아름답게 견뎌내는 무공해 위력이
척추 수술 친구 거처를 끌어내렸다
병문안 발길 완행기차에 얹어놓자
되살아나는 기억들
오르내리는 슬로모션 밥 숟가락질
오늘 하루 엄청 배부르다
급행만 고집한 내 삶의 기찻길
내려놓고 오늘부터
놀멍
쉬멍
숨고르멍 가키어*
*놀며 쉬며 숨고르며 가리라 제주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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