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2011 '이 아침에'

꿈의 계절 5월 예찬
                                            조옥동/시인
5월은 사람들의 마음을 순화시키고 섬세하게 다듬는 힘이 있다. 넘치지도 인색하지도 않게 펼쳐지는 5월의 신록은 사람들 얼굴위에 편안한 웃음을 그려주고 몸속에 푸른 피를 흐르게 한다. 젊은 날의 풍요와 사랑을 회상하며 가슴에서 솟아나는 희열을 느낀다. 심술궂은 바람의 시샘으로 시련을 동반하는 사월과 너무 기가 살아 격정을 드러내는 유월사이에서 5월의 햇살은 아가의 살빛같이 빛나고 바람은 보드랍다.

5월은 또한 시인의 달이다. ‘넘쳐 터지는 이 가슴의 기쁨/대지여 태양이여/ 행복이여 환희여’ 라고 충만한 감사를 토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사람들로 하여금 시인이 되게 만든다. 5월엔 왠지 모르게 빨간 장미의 사랑을, 5월의 향기를 누구에게 자꾸 주고 싶다.

며칠 전 지인의 장례식에 갔다가 좀 시간이 일러 주위의 숲과 초목을 둘러보며 5월의 초록바다 심연에 빠져들었다. 아래 세상에서 느껴지던 목마름과 무엇이든 손에 쥐고 싶은 열망 때문에 받는 강박성은 조용히 사라지고 온 몸의 세포들이 본연의 자리에 차분히 정열 된 마음으로 예식에 참석했다.

조촐하고 엄숙한 순서 후 고인과 마지막 대면하는 시간에 조문객은 잔잔히 웃고 있는 영정 앞에 멈춰 섰다. 지병과 힘겹게 싸우며 훼손된 모습대신 고인의 미소를 기억에 담을 수 있어 다행스러웠다.

5월엔 이별의 슬픔조차 아름답게 보인다. 세상을 하직할 때는 웃는 얼굴로 싱그러운 5월의 언덕위에 신록의 오케스트라를 들으며 잠들고 싶다는 소원을 해보았다. 마치 40여 년 전 내가 5월의 신부가 되었던 때처럼.

하관 식장으로 가는 길은 5월의 장미가 가지각색으로 피어 마치 천국 문에 들어가는 착각을 할 만큼 온 몸에 황홀한 전율이 퍼졌다. 언덕을 오르니 이 곳 저곳에 많은 구덩이를 파놓았다. 장례인파로 넓은 파킹장과 묘지로 오르는 길들이 비좁을 정도였다. 죽음조차 이 계절을 좋아하나보다.

형벌만큼 무서운 세속의 고통을 벗고자 꽃과 바람과 구름과 이슬과 별들이 속삭이는 이 주검의 땅으로 인생이 피난을 온 것일까. 이곳에 남루한 육신은 묻어버리고 영혼은 저 높은 창공을 날아 본향인 하늘나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나려는가.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는 선지자의 가르침같이 우리는 자연의 일부로 생성되고 또 소멸할 뿐이다.

그러나 5월은 사춘기를 지나 성년기에 방금 들어선 초입에서 전날의 무책임한 방황과 어리석음을 가려내고 다가설 장년기에 겪을 시련과 고난을 바라보며 성숙한 인생의 모습을 꿈꾸는 계절이다. 최선의 삶을 살아서 꽃이 진 자리엔 후대에 남길 작은 열매라도 맺고 싶은 꿈 말이다.

5월처럼만 싱그럽고 사랑스럽고 숭고해지라는 시구처럼 또한 이 세상에 잠시 소풍 왔다고 살다가 귀천(歸天)한 천상병 시인의 ‘나는 늙었지만 신록은 청춘이다/청춘의 특권을 마음껏 발휘하라’ 던 외침처럼 5월은 일생의 또는 일 년의 꿈을 꾸는 특권을 발휘할 청춘기이다. 5월은 햇살과 바람과 풀잎과 함께 초록색 세상에서 싱싱한 미래를 꿈꾸는 계절이다.

5월엔 외롭지 말자. 슬픔도 쓰린 가슴도 모두 5월의 햇살이 놀고 있는 부드럽고 풍성한 숲속에 풀어 놓고 그들의 은밀한 위로와 평화 속에 환호해 보자.